글 싣는 순서
1. “그땐 내가 날렸어”… 어느 퇴역 여군의 회상
2. “정말 싫었는데..” 女軍인 것이 죄
3. '꽃다운 나이에…'울어버린 女軍 하사관
4. ‘그녀들은 국가를 택했지만 국가는 그녀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5. ‘외로움이라도 좀 달랬으면’...퇴역 여군의 마지막 바람
육군 상사 출신의 유성옥(가명, 74)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였던 사촌오빠가 전사한 뒤 ‘북한군이 미워서’ 19살이 되던 지난 1959년에 이등병으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유 할머니는 “전쟁이 일어나서 북한군을 무찌르면 죽은 사촌오빠 영혼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할머니는 병사 생활까지 합쳐 모두 13년간의 군생활을 한 뒤 강제전역 당했다.
꽃다운 20대를 모두 군에서 보낸 유 할머니가 30대 초반에 전역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다.
유 할머니는 “전역하고 나오니까 결혼 적령기도 놓쳤지, 그러니까 닥치는대로 사는거야. 적성에 안 맞아도 자존심을 다 팽개쳐놓고 사니까 1년 벌어서 1년 먹고 사는거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36살이 되던 해,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결혼을 해야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혼적령기를 한참 지난 유 할머니와 결혼할 남성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기혼자와 결혼했지만 전처 자녀와의 불화 끝에 이혼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유 할머니는 “내가 그런 고통을 겪고 사느니 차라리 좋은 사람들끼리 살게 해주고 나 혼자 살아야겠다 하고 이혼을 했지”라고 눈물을 훔쳤다.
유 할머니는 그나마 젊은 시절 들어둔 연금저축 덕분에 한달에 50만원 정도씩 연금을 받지만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생활한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생활이 안받쳐주니까 실의에 빠지고 그래서 우울증 증세까지 오고, 너무 억울한거야. 꽃다운 청춘을 다 국가에다 바쳤는데 결과적으로는 노후에 이렇게 됐다고 싶은게...”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명백한 남녀차별적 인사규정이지만 여군이 창설된 뒤 40년이 넘게 이 제도는 유지됐고 지난 1992년에야 폐지됐다. 관련자료에 따르면 1992년 당시에만 이 제도에 따라 강제전역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여군 하사관은 모두 104명에 이르렀다.
이에 일부 하사관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국방부는 “여군 하사관 규정은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위법 조항이 아니므로 그대로 시행하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제도를 폐지했다.
당시 3.4.5제 폐지 선봉에 섰던 김화숙 예비역 대령(당시 여군단장)은 “그때 당시는 워낙 여군 숫자가 적으니까 복지라든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이익을 너무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3.4.5제는 결혼과 임신을 금지한 규정, 그리고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여군들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제대한 뒤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김 대령은 “3.4.5제나 결혼 금지 규정 때문에 주변에 여군 출신들을 보면 절반 이상이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홀로 살거나 결혼에 실패하다보니 혼자 살면서 어렵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누구하나 등 떠미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스로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일념으로 군을 택했던 선배 여군들이 결국 불합리한 제도의 벽에 막혀 국가에 대한 봉사에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노후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