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나이에…'울어버린 女軍 하사관

[연속기획] ③ 퇴역 여군을 아십니까?

올해로 여군 창설이 64주년을 맞았다. 4백 여명에 불과하던 여군 수가 64년 동안 9천여명에 육박하고 장군도 8명이 배출되는 등 여군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여군이 있기까지 밑거름 역할을 했던 퇴역 여군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군출신에 대한 선입견과 강제 전역, 결혼실패 등의 이유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꽃다운 청춘을 국가에 바친 퇴역 여군에 대한 국가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CBS 노컷뉴스는 모두 5차례에 걸쳐 퇴역 여군의 실태를 살펴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그땐 내가 날렸어”… 어느 퇴역 여군의 회상
2. “정말 싫었는데..” 女軍인 것이 죄
3. '꽃다운 나이에…'울어버린 女軍 하사관
4. ‘그녀들은 국가를 택했지만 국가는 그녀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5. ‘외로움이라도 좀 달랬으면’...퇴역 여군의 마지막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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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사 출신의 유성옥(가명, 74)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였던 사촌오빠가 전사한 뒤 ‘북한군이 미워서’ 19살이 되던 지난 1959년에 이등병으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유 할머니는 “전쟁이 일어나서 북한군을 무찌르면 죽은 사촌오빠 영혼이라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할머니는 병사 생활까지 합쳐 모두 13년간의 군생활을 한 뒤 강제전역 당했다.

꽃다운 20대를 모두 군에서 보낸 유 할머니가 30대 초반에 전역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다.

유 할머니는 “전역하고 나오니까 결혼 적령기도 놓쳤지, 그러니까 닥치는대로 사는거야. 적성에 안 맞아도 자존심을 다 팽개쳐놓고 사니까 1년 벌어서 1년 먹고 사는거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다 36살이 되던 해,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결혼을 해야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혼적령기를 한참 지난 유 할머니와 결혼할 남성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기혼자와 결혼했지만 전처 자녀와의 불화 끝에 이혼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유 할머니는 “내가 그런 고통을 겪고 사느니 차라리 좋은 사람들끼리 살게 해주고 나 혼자 살아야겠다 하고 이혼을 했지”라고 눈물을 훔쳤다.


유 할머니는 그나마 젊은 시절 들어둔 연금저축 덕분에 한달에 50만원 정도씩 연금을 받지만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켜지 않고 생활한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생활이 안받쳐주니까 실의에 빠지고 그래서 우울증 증세까지 오고, 너무 억울한거야. 꽃다운 청춘을 다 국가에다 바쳤는데 결과적으로는 노후에 이렇게 됐다고 싶은게...”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퇴역 여군 실내훈련 모습. 사진 제공=전쟁기념관
육군 상사로 장기복무를 원했던 유 할머니가 강제전역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군 하사관의 경우 하사 3년, 중사 4년, 상사 5년을 마친 뒤 전역해야하는 ‘3.4.5제’ 때문이었다.

명백한 남녀차별적 인사규정이지만 여군이 창설된 뒤 40년이 넘게 이 제도는 유지됐고 지난 1992년에야 폐지됐다. 관련자료에 따르면 1992년 당시에만 이 제도에 따라 강제전역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여군 하사관은 모두 104명에 이르렀다.

이에 일부 하사관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국방부는 “여군 하사관 규정은 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위법 조항이 아니므로 그대로 시행하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제도를 폐지했다.

당시 3.4.5제 폐지 선봉에 섰던 김화숙 예비역 대령(당시 여군단장)은 “그때 당시는 워낙 여군 숫자가 적으니까 복지라든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불이익을 너무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복입은 여군. 사진 제공=전쟁기념관
문제는 지금은 폐지된 이 규정 때문에 당시 여군 하사관들은 12년 이상 군 생활을 할 수 없었고 결국 20년 이상 복무자만 받을 수 있는 연금수령 기회를 원천박탈 당했다.

특히, 3.4.5제는 결혼과 임신을 금지한 규정, 그리고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여군들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제대한 뒤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김 대령은 “3.4.5제나 결혼 금지 규정 때문에 주변에 여군 출신들을 보면 절반 이상이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홀로 살거나 결혼에 실패하다보니 혼자 살면서 어렵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누구하나 등 떠미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스로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일념으로 군을 택했던 선배 여군들이 결국 불합리한 제도의 벽에 막혀 국가에 대한 봉사에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노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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