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쯤 대전에 있는 친정에 가서 첫째 아이의 예방접종을 했었는데, 이에 대한 의료 내역이 없었던 것.
혹시 잘못 기억하고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동안 모아뒀던 병원비 영수증을 꺼내 확인했다. 기억은 정확했고 대전의 A 병원에서 20만 원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전화를 걸어 의료 내역이 누락됐다고 말하자, 해당 병원은 "직접 오면 발급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씨는 고민했다. 신혼 집이 서울인데 대전까지 KTX를 타고 다녀온다 해도 이것저것 합치면 소요되는 시간은 5시간 가량. 게다가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5만원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진료비 내역 첨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씨는 "20만 원짜리 의료비 내역 증명서 하나 받겠다고 5만 원에다가 하루를 들이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와 관련, 여기저기서 병원비 누락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부 병원들이 주소지가 멀거나 한두 번 방문한 '뜨내기' 소비자에 대해 고의로 진료 내역을 누락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실제 인터넷 카페 등에서 '연말정산 병원비 누락'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피해 상담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의료비 부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사업자 소득이 노출되면 세금이 올라가는 걸 우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병원들의 고의 누락으로 인한 피해 신고는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 콜센터에도 상당히 많이 접수되고 있다.
콜센터 한 관계자는 "(의료비 누락으로 인한 상담전화가) 굉장히 많다"며 "이 때문에 의료비 신고센터를 따로 만들어놨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고의로 누락하는 상습 병원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 원천세과 한 관계자는 "병원이나 그런 기관들이 자기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제출하는 것인데, 이것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제재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화면에서 '병원이 진료비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신고하도록 올해부터 마련해놨지만, 병원측이 내줄 수 없다고 버티면 국세청은 어떻게 할 수 없고 소비자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세청 측은 또 상습 고의 누락 병원 및 기관들에 대해서 세무조사 역시 실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일 뿐'이란 이유에서다.
국세청 한 관계자는 "병원에 얼마를 안 냈는지를 국세청에서는 알 수 없다"며 "나중에 파악해서 '잘 내줘라' 정도로 행정지도를 할 수는 있지만, 간소화 자료를 안 냈다고 세무조사를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