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에 대한 고문 실화를 다룬 '남영동 1985'나 5·18 민주화운동 2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26년' 등 지난해 대선국면에도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었지만 관객동원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변호인'은 일단 차원이 달라 보인다.
특히 이 영화가 1970∼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중·장년층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냈다는 점에 비쳐볼 때 이 연령대의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이 '변호인'의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야권은 일단 '변호인'의 흥행돌풍을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공권력의 부당한 집행이라는 모티브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연말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사태 등과 '오버랩'되면서 지지층 결집 및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정서를 견인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노 전 대통령의 삶을 직접적 소재로 다룸으로써 그에 대한 '향수효과'가 유발돼, 친노진영의 재기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민주당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당의 정체성을 환기시키고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층에게도 울림을 주는 효과가 생기면서 지방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한 핵심당직자의 말에도 기대감이 묻어났다. 이번 선거가 노 전 대통령 서거 5주기(5월23일) 직후 치러진다는 점도 야권이 '변호인 마케팅'을 통한 '노풍'(盧風·노무현 바람) 재점화에 다시한번 기대볼 수 있음직한 대목이다.
당장 민주당 등 야권은 20일 잇따라 논평을 내고 영화 흥행을 지렛대로 현 정부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 허영일 부대변인은 "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의 어두운 과거가 박근혜정부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문화적 저항'이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이구동성으로 독재와 국가폭력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정의당 이기중 부대변인도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을 연상케 하는 박근혜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 천만 관객을 만든 힘"이라고 평했다.
반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사실과 허구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며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수도권 중진은 "야권이 영화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과 지방선거가 시기적으로 떨어져 있는데다 우리사회내 이념지형의 불균형 현상 심화 등으로 인해 효과가 미미하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선거 직전에 개봉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초대형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그 이전 이슈를 덮는 한국정치의 특성상 효과가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와 맞물려 야권의 승리로 귀결됐던 2010년 6·2 지방선거 때와는 정치적 여건과 환경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민 정치컨설팅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 '정치적 피해자'로서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복 분위기가 이명박 정권 심판론과 연계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그때와 곧바로 치환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가 추진중인 민주당의 내부 혁신과 안철수 신당 출현도 '변호인'의 파급력을 제한할 잠재적 요인으로 꼽힌다. 김 대표는 최근 당내 계파청산을 강조하면서 지방선거에서 '탕평 공천'을 추진중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나타난 '친노 구도'라는 확실한 각이 서지 않게 되면 '변호인'에서 파생하는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방선거 전에 신당 창당을 한다면, '변호인'에 공감한 중도층표가 신당 진영으로 일부 흡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변호인'으로 상징되는 친노정서에 기대지 말고 민주당 스스로 환골탈태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진보의 재결집, 젊은 층의 각성,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모아나간다면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민주당이 과거의 향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도 "대선 이후 야권 지지층의 분노가 분출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점은 있다"면서도 "민주당과 친노가 단순히 '노무현의 승계자'라는 점을 넘어 영화의 울림을 현실정치로 승화시켜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야와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영화는 영화고, 정치는 현실"이라는 데로 수렴된다. 지난 대선 직후 상영된 레미제라블은 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야권 지지자들에게 '힐링 영화'가 됐지만,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함으로써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나오는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