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그땐 내가 날렸어"… 어느 퇴역 여군의 회상
2. "정말 싫었는데…" 女軍인 것이 죄!
3. ‘이제 그만 나가라’...‘3.4.5제’ 악법에 두 번 운 퇴역 여군
4. ‘그녀들은 국가를 택했지만 국가는 그녀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5. ‘외로움이라도 좀 달랬으면’...퇴역 여군의 마지막 바람
◈ 목숨바친 특련훈련도 결혼금지 규정에 무용지물
지금은 평범한 두 아들의 어머니, 그리고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된 최정미(가명, 62) 씨. 그러나 최 씨는 남자들도 견디기 힘든 특수훈련을 받은 특전사 출신 여군이다.
1970년 이등병으로 입대한 최 씨는 전방부대에 차출돼 2년 동안 대북방송을 담당한 뒤 특전사에 자원해 5년간 남군과 똑같은 훈련을 받으며 특전사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했다.
최 씨는 “처음에는 후방에서 근무하고 싶었는데 군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왕 군 생활을 하는거면 더욱 더 군인답게 생활해 보자는 사명감에 특전사에 가게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최 씨는 7년간의 군 생활을 끝으로 자랑스러운 베레모를 버려야했다. 당시만 해도 하사관은 결혼을 하면 강제 전역시키는 제도가 있었고 최 씨는 결국 결혼을 위해 군을 떠나야 했다.
“정말 전역하기 싫었는데 시대를 잘못만난 탓에 결혼해서 식모살이만 한 거 같다”는 최 씨는 “남들이 보기에는 그 푸른 제복이 한낱 헝겊에 불과할지 몰라도 저한테는 보물이었고 아직도 군복입고 군 생활하는 모습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 결혼금지 규정에 자랑스런 군복 내려놓은 여군
김영숙(가명, 59) 씨 역시 결혼을 앞두고 전역한 여군 중사 출신이다. 1973년에 이등병으로 자원입대한 김 씨는 군복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자신을 군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어린 마음에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지금도 가끔 군 시절 생각하면 참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김씨는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하지만 그녀도 ‘여성 하사관 결혼 금지’ 규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전역을 했다. 청춘을 바친 군을 떠나 결혼을 선택한 김 씨의 결혼생활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다.
지금은 보증금 5백만원짜리 사글세방에서 남편과 함께 살면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간다는 김 씨는 자신은 그나마 젊은데 연로하신 선배 여군이 고생이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김 씨는 “저야 그나마 결혼도 해서 남편도 있고 아직 일할 기운이 있지만 선배님들은 군대 있다가 결혼시기도 놓치고 혼자 살면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한테 뭔가 국가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경력단절과 결혼포기 '둘 중 하나 선택해!'
국방부는 여군 창설이후 30년이 넘게 여성 하사관의 결혼을 금지시켰고 장교의 경우 결혼은 허용하되 임신은 금지시켰다. 규정 위반은 곧 강제전역을 의미했다. 그러다 1984년에 중사이상 하사관의 결혼이 허용됐고 1988년에 이르러서야 여군의 임신이 허용됐다.
김 대령은 “결국 상당수 여군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군에 남거나 중간에 결혼을 위해 군을 떠나야 했다”며 “결혼을 택한 여군은 평생 그게 가슴에 남고, 복무 중에 결혼을 포기한 여군은 나중에 전역해도 나이가 차서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서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국가에 헌신하기 위해 꽃다운 청춘을 군에서 보낸 여군들에게 돌아온 건 결국 경력단절과 결혼포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는 남녀차별이라는 현실의 높은 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