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에 제2의 분당?…날탕 정부정책에 망가진 기업들

공기업 부채의 기원 거슬러 올라가보니…"그 끝은 대부분 국책사업"

박근혜 정부가 새해 들어 공기업 개혁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이 산하 공기업 사장들을 불러모아놓고 호통 치는 모습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흡사 부처(장관)는 포청천, 공기업(사장)은 죄인 같다. 그러나 공기업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공기업이 망가진 것은 상당부분 정부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뇌사 상태인 환자의 손발만 수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기업 수술이 성공하려면 진단부터 옳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기업 개혁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CBS노컷뉴스는 공기업 개혁의 올바른 방향과 방식을 제시하는 기획보도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계획지구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9년 8월 27일, 당시 국토해양부는 2012년까지 수도권에 서민용 주택 60만 가구를 짓겠다는 이른바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경기도 시흥시와 광명시 경계 지역에 여의도 면적 6배가 넘는 그린벨트에 9만 5,000가구가 입주할 분당 신도시급 주택지구건설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 사업은 현재 올 스톱 됐다.

반경 10km 이내에 9만 가구의 공급이 이미 예정돼 있었던 데다 23조 6,000억 원에 이르는 사업비 마련도 걸림돌로 작용한 때문이다.

LH 광명시흥사업본부 문희구 차장은 "수요에 비해 지구 면적 자체가 큰 부분도 있고, LH 부채 문제도 있고, 부동산경기도 안 좋고 해서 사업 지구로 지정받은 지 3년이 경과했지만 아직 사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재무역량을 고려한 재원확보 계획이나 시장여건, 수용타당성, 투자 및 공급 회수계획 등 사업투자타당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경영투자심사위원회 심의마저 모두 생략한 채 사업을 추진한 결과"라고 평가한 바 있다.

결국 LH로서는 그 동안 이 사업에 투입한 155억 원만 묶이고 말았다. 12억 7,000만 원의 이자를 낭비한 것은 물론이다.

이 사업은 조기에 중단돼 그나마 다행스런 경우지만 이미 막대한 사업비를 쓰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지구도 적지 않다.

고양 향동지구·지축지구 보금자리주택 사업의 경우 그 동안 2조 3,520억 원의 돈을 보상 등에 쏟아 부었지만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부지조성공사 조차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LH가 국민임대단지에서 보금자리지구로 전환한 31개 지구 가운데 고양 향동지구·지축지구 같은 19개 지구는 중복투자에 의한 수요부족 등의 사유로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 보류되고 있다.

이 19개 지구에 투입된 사업비만도 5조 8367억 원에 달해 9,678억 원의 금융비용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이 회사가 2011년까지 진행한 보금자리 주택사업으로 떠안은 금융부채(부채 가운데 이자가 발생하는 부채)만도 12조 5,802억 원에 이른다.

LH가 이명박 정부시절 진행한 산업단지 조성사업, 세종시·혁신도시 사업 등 다른 국책 사업을 진행하다 새로 떠안은 금융부채까지 포함하면 30조 원 가까이 된다.

LH 조성근 노조 위원장은 "보금자리사업 같을 것을 하면 빚이 발생된다는 걸 알았지만 정부정책 사업을 안했을 경우에 돌아오는 것들은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며 "정부에서 하라고 하니까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빚더미에 앉게 된 공기업은 정부정책을 뒷받침하다가 그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4대강사업, 인천공항철도,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등이 공기업들에 막대한 부채를 남긴 대표적인 국책사업이다.

서울대 홍종호 교수(환경대학원)는 "정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정책을 펴면서 공기업에 떠넘기는데 그 것을 거부할 공기업 사장이 어디 있겠냐"며 "수자원공사의 경우 부채비율이 15%도 안 되던 회사였는데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졸지에 100%대로 뛰었다. 그 것은 절대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295개 공기업 가운데 부채가 많은 12개 공기업의 부채는 2007년 186.9조 원에서 2012년 412.3조 원으로 225.5조 원이 늘어났다.

이들 12개 기업이 지난해 이자로 낸 돈만 7조 8,000억 원에 달했다.

이제는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부채를 끌어 쓰는 공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석탄공사, 철도공사, 한전은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누어 산출하는 채무상환능력)이 마이너스로 이자비용도 안 되는 돈을 버는데 그치고 있다.

이로 인해 상당수 공기업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됐다.

지난해 11월 현재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는 철도공사, 광물자원공사, LH, 석유공사의 독자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분류하고 있다.

공기업의 독자신용등급 하락은 향후 정부의 공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이 필요할 가능성을 높여 국가신용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정부 정책을 수행하면서 앞 뒤 안 가리고 홍위병처럼 나선 공기업도 분명 잘못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공기업의 실패는 정부정책의 실패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다.

따라서 공기업 수술에 앞서 실패한 정책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우선돼야 한다.


(▶ 이 오디오는 CBS 뉴스시사 FM(서울 98.1) '하근찬의 아침뉴스'에서 방송된 리포트입니다. '하근찬의 아침뉴스'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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