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친동생과 책사가 직접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인사들을 상대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명했으나 냉담한 반응만 확인한 것이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이하 현지시간) '아베의 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신임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꼬집어' 거론하면서 주변국과의 갈등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미국 고위관리를 인용해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라이스 보좌관은 특히 북한문제에 대처하는데는 한·미·일 3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보도는 야치 국장이 라이스 보좌관과의 회동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말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지지통신도 야치국장의 워싱턴 회담에서 야스쿠니 문제가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보도대로라면 야치 국장이 야스쿠니 사태를 '해명'하려다가 오히려 '훈계'를 들은 셈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같은 날 야치 국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을 것으로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특히 케리 국무장관의 경우 일본 정부의 '위안부 결의안' 준수 촉구 법안이 16일 의회를 통과한 직후 만났다는 점에서 관련 언급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안에는 '국무장관이 일본 정부에 대해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하라는) 2007년 하원 위안부 결의안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독려할 것을 촉구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의회는 해당 조항을 근거로 국무장관에게 이행상황을 질의하고 보고받을 권한이 있기 때문에 케리 장관으로서는 야치 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일본 외무성 부대신도 지난 13일부터 국무부와 의회 인사들을 만나며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명했으나 미국 측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가 17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문을 내고 중국이 일본을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으나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이 기고문은 일주일 전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가 WP 기고문을 통해 아베 총리를 강도 높게 비판한 데 대한 맞대응 차원이었다.
오히려 워싱턴 내에서는 대일 비판여론이 점점 더 고조되는 분위기다. 단순히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오바마 행정부가 직접 나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의회와 학계, 싱크탱크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지 워싱턴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앤드루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는 CNN 특별기고를 통해 "아베의 문제있는 행동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응이 너무 나약하다"고 지적하고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장관은 중요한 연설을 통해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위와 2차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미화하려는 움직임을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회에서는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해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인 게리 코널리 의원, '위안부 법안' 통과의 주역인 마이크 혼다·스티브 이스라엘 의원 등이 아베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직 고위관리 중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제프리 베이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이 비판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20일부터 한·중·일 순방에 나서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행보에 워싱턴 외교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결의안' 준수 촉구 법안이 통과된 이후 국무부 고위당국자의 첫 일본 방문이기 때문이다. 러셀 차관보가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에 과연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