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은 한국 영화로는 아홉 번째로 10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개봉 전부터 논쟁을 부른 까닭에 변호인의 1000만 관객 동원은 힘들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돈을 좇던 한 변호사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 여정을 통해 삶의 자세와 사회 정의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호인은 지난달 18일 개봉 이래 4일 만에 100만, 13일 만에 500만, 26일 만에 900만 관객을 넘기며, 앞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아바타'(2009)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7번 방의 선물'(2013) 보다 빠른 속도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변호인이 1362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의 기록을 깰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화 변호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별로 변호인을 본 네 명을 인터뷰 했다. 이들은 극중 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각자 처한 현실과 우리사회의 현재를 봤다. 또한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처럼 인권변호사로서 현장을 누비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인 권영국(51) 변호사는 "이 영화가 자기 문제에 매몰됐던 우리에게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전했다.
극중 송강호가 소란을 떠는 쥐들을 향해 "야옹 야옹" 고양이 흉내를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힌 이창희(45) 서울지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사무국장은 "주인공이 봉투에 구겨진 돈뭉치를 다소 천박하게 담아 올 때 경제적인 것에 매몰돼 사는 우리 모습이 떠올랐고, 지붕의 쥐들에 화가 나 생선을 던지고 고양이 흉내를 낼 때는 열악한 현실을 따뜻한 낭만으로 극복하려는 소시민의 삶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학생운동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극중 고문받는 대학생을 보면서 주인공인 변호사가 우리를 변호해 주려는 사람으로 느껴졌다"며 "실제 현실에서도 개인들이 무시되고,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데 공감하는 상황에서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와 30대는 극중 부조리한 국가권력의 희생양이 된 또래 대학생 진우(임시완)에게 감정 이입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에 사는 취업준비생 장수현(가명·27)씨는 "그 청년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는 것 자체가 슬펐다"며 상황은 다르나 요즘 20대 청춘들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궁지에 몰린 진우의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듯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예전 대학생들은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이 크고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도 있었던 듯한데, 저를 포함한 지금의 대학생들은 취업에 눈이 맞춰져 '내가 살고 봐야지'라는 생각에 지성인이라기 보다는 '취업 취업 취업' '돈 돈 돈'에 쫓기는 것 같다"고 비교했다.
변호인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를 경험한 40, 50대는 영화 속 민주주의의 위기를 현재 진행형으로 느꼈다.
과거에는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면, 지금은 종북몰이 등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사람들은 보통 사법부가 개혁됐을 거로 여기는데, 실제 법정에서 보면 재판부에 따라서 여전히 매우 권위적인 태도를 취한다"며 "재판장의 생각틀에서 벗어난 주장들이 여전히 차단되는 셈인데, 최근 법원의 철도노조에 대한 체포영장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방해가 성립이 안 되는데도 발부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인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사법부와 현실의 사법부는 닮았다"고 덧붙였다.
이 둘은 지금의 청년 세대에 대한 미안함도 드러냈다.
북한학 박사인 이 사무국장은 북한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강단에 서고 있는데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역동성은 있지만, 아르바이트 등에 치여 낭만 없이 우리 때보다 힘들게 산다는 것을 느낀다"며 "우리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된 현실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벗고 예전에 가졌던 뜻을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재가동된 민주동문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민주동문회는 1987년 군부독재에 대항해 일어난 6월항쟁 이후 각 대학별로 만들어졌고, 1991년 60여개 대학이 모여 전국 단위로 꾸려졌다.
이 사무국장은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가 나름 민주화를 이뤘다고 판단들을 해 민주동문회 활동이 뜸해졌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민주주의가 적잖게 후퇴를 했고 위기가 왔다는 데 회원들이 공감해 다시 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몹시 개인주의화되고 엄청난 경쟁을 뚫지 않으면 제대로 된 취업자리를 엄두도 못내는 것이 현실인데, 변호인이 이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국가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청년들의 대자보 역시 결국은 자기 문제일 수밖에 없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살지 말자는 뜻으로 다가오는데다, 영화 속 대학생들은 불과 30여 년 전 제 젊을 때 모습으로 이제는 잊어 버려도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봤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한 위원장은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면서 청년 스스로 작지만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러한 작은 희망 하나 하나가 모여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변호인도 그 작은 희망 가운데 하나로 다가온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영화 변호인에서는 사람이 절망인데 조작하는 사람들, 고문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변호사, 기자, 야학을 하는 대학생, 그의 어머니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준다"며 "사람이 곧 희망인 셈인데, 결국 우리가 희망을 가질 것인가, 마냐는 자기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