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왜 이렇게 늦어지나?"

빨라도 앞으로 두세 달 걸릴 듯,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2013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건 누가 뭐래도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면서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2014년의 새해가 밝았지만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의 핵심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판에 회부된 건 지난해 6월 14일, 이미 기소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국정원이 댓글뿐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서도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1심 재판이 언제 마무리 될 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빨라도 두세 달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왜 이렇게 늦어지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원세훈 전 국정원에 대한 재판은 두 갈래다. 하나는 개인비리 혐의이고 하나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등의 혐의다.

일단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개인비리인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 측 구형이 이뤄졌고 법원의 1심 선고는 다음 주인 오는 22일 이뤄질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과 순금 20돈·크리스탈 몰수, 추징금 1억6천91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국가 고위 공직자로서의 직무와 지위, 피고인이 수수한 금품 규모, 범행의 정상 등으로 미뤄 사안이 중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을 함께 고려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구속된 피고인에 대한 1심 선고는 6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구속만기일이다.
(1심 6개월, 2심과 3심은 각각 4개월 이내에 선고가 이뤄져야 함) 원 전 원장의 구속만기일은 오는 24일 금요일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언제쯤 결심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냐?

= 그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검찰이 지난해 6월 14일 처음 기소했던 혐의대로라면 이미 결심 공판이 끝났을 수도 있지만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해 트위터에 게재된 국정원 직원들의 글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소했는데 그 부분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그래서 빨라도 두세 달이 더 걸릴 것이라는 그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원은 그 동안 매주 공판을 열었지만 지난 13일 공판에서는 2주 뒤인 다음달 27일로 공판기일을 정했다.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트위터 활동 의혹을 3주 안에 정리해 입증하겠다고 밝혔으니까 이 작업이 앞으로 진행돼야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그리고 검찰에서 자료를 제출하면 변호인 측에서 이 자료에 대한 반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 일로 한 달 정도는 그냥 지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검찰이 증인으로 신청한 국정원 직원들 중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작업을 한 직원들을 상대로 한 증인 신문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도 법정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공방이 많이 남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무리 빨라도 앞으로 2~3개월은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그런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초 두 사건의 판결을 비슷한 시기에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재정신청 인용과 공소장 변경 등으로 선거법 위반 사건의 심리가 늦어지면서 개인비리 사건 심리를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개인비리 혐의에 대해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면 구속 상태에서 계속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기소를 했지만 국정원법 위반이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를 했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판은 마무리 됐나?

= 아직 마무리 된 건 아니지만 검찰 측 구형이 이뤄졌고 다음달 6일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으니까 사실상 1심 재판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송은석 기자/자료사진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김 피고인이 수도 서울 치안 책임자로서 직권을 남용해 허위 수사발표를 강행했다.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이 국정원의 범죄 사실과 관련한 증거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이를 수사팀에 알리지 않은 채 대선 직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며 "사안의 중대성을 잘 인식했던 피고인이 대선 후보 지지 비방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언론 브리핑을 강행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고 선거 운동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서울청 분석관과 수서서 수사팀 관계자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의 책임 역시 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김 전 청장은 최후진술에서 "검찰은 내가 경멸하다시피 했던 '정치경찰'이라는 오명을 씌웠고, 개인영달에 눈이 멀어 경찰을 팔아먹은 역사의 죄인이자 철면피로 만들었다"며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수많은 나날을 불면으로 지새웠다"고 반박했다.

김 전 청장은 이어 "검찰의 경찰 비하적인 선입관과 짜맞추기식 수사에 경악했다"며 "공소장을 볼 때마다 대한민국 검찰이 어떻게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황당한 기소 논리를 내세우게 됐는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 왜 이렇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늦어지는 것이냐?

= 가장 큰 이유는 검찰이 두 차례 공소장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할 당시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 공직선거법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금지) 1항 위반 혐의를 적용했는데,
처음에는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대선 관련 글을 73건이고, 선거를 포함한 정치관련 글은 모두 1977건이었다.

검찰은 그렇지만 1차 공소장 변경을 통해 기존 인터넷 댓글을 통한 73건의 대선개입보다 762배 많은 트위터를 통한 5만5689건의 개입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에서 조직적으로 대선개입 활동을 벌인 혐의를 원 전 원장의 공소사실에 포함시키기 위해 지난해 10월 법원에 공소장 변경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 계정 402개를 이용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글 5만5689건을 올리거나 퍼 나르기(리트윗)한 혐의다.

검찰은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2차 공소장 변경을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트위터 121만 건을 통한 정치 선거 개입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이 추가 기소한 트위터 121만 건 중 선거 관련 글은 64만7천 건, 정치 관련 글은 56만2천 건이었는데, 검찰은 이 가운데 실 텍스트, 즉 퍼 나르기 대상이 된 원문 성격의 글은 모두 2만6500건이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다퉈야 할 혐의가 많아졌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재판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소장 변경 외에 다른 이유도 있나?

= 결과적으로는 공소장 변경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이다. 검찰이 공소장 변경 없이 처음
기소한대로 재판이 진행됐다면 김용판 피고인의 경우처럼 결심공판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두 차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혐의가 무겁다는 걸 강조했다. 그런데 이렇게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범죄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사안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트위터팀) 직원의 전자우편을 압수수색해 전자우편 본문과 첨부파일에서 안보5팀 직원들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414개를 확인했는데, 검찰은 이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시인한 계정 등 확실한 계정 383개를 1차 그룹으로 추렸고, 이 계정에서 12만 건의 대선개입이나 정치 개입 글을 올린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국정원 안보5팀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사용한 계정 2천270개를 추가로 확인했으며, 이들 계정에서 2천200만 건의 글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그렇지만 처음 찾은 383개 계정의 대선·정치 개입 원글 12만 건과 2천270개 계정에서 이 원글을 리트윗한 109만 건을 합쳐 121만 건만 대선·정치 개입 관련 글이라고 공소장에서 밝히고 있다. 2천270개 계정에서 올린 전체 2천200만 건의 글 가운데 109만 건을 제외한 나머지 2천91만 건은 제대로 분석을 하지 못했거나 범죄 혐의를 적용할 정도로 분석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검찰이 추가한 121만 건도 적은 양이 아니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방어해야할 범죄 혐의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검찰의 기소를 반박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검찰은 방대한 트위터 글이 국정원의 대선·정치개입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고 밝혔지만 정작 트위터 글이 재판 진행을 더디게 하면서 검찰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지만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고관대작들의 집을 잇따라 털어서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얻은 조세형씨 사건 기억나나? 조세형씨가 1982년 검거됐을 당시 전과 11범이었는데 체포당시 반지. 목걸이. 다이아 등 고가의 귀금속이 마대자루 2개 분량이나 됐다고 한다. '물방울 다이아'도 있었는데 이 정도의 분량이면 수십 건에서 수백 건에 이르는 절도가 이뤄졌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재판에서는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하나하나 모두 입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도 조세형씨에게 적용된 절도범죄 혐의가 100건이면 이 100건의 절도범죄 혐의를 하나하나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건이 많을 경우 일부 무죄가 나기도 하는데 전체 혐의에는 영향이 없더라도 기소를 한 검찰의 입장에서는 입증해야 할 범죄 혐의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법조출입기자들은 원세훈 측 변호인들이 전략을 잘 짜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원세훈 전 원장 변호인들은 기소된 계정 중 상당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닌 일반인의 계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121만 건 중 단 한 건이라도 국정원 직원이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면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머지 트위터 글들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팀이 그동안 팀장이었던 윤석렬 여주지청장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했기 때문에 12만 건의 원 글 하나하나를 어떤 사람이 썼는데 그게 어째서 국정원 직원의 글이고, 이글이 왜 대선 개입 또는 정치 개입 글인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검찰에서는 그제(13일) 공판에서 "3주의 시간을 주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최종 의견을 제시하겠다. 변호인이 문제 삼을 일이 없도록 깨끗하게 입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재판부 입장에서도 공소장 변경을 통해 혐의와 관련된 댓글이나 트윗 글이 많고, 관련된 자료가 많다보니 기본적으로 피고인이나 변호인 측에 방어할 시간을 최대한 주려고 한다. 자료 검토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마무리 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국정원 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이 줄줄이 한직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도 재판이 늦어지는 이유와 관련이 있나?

자료사진
= 그 부분을 두고 재판진행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무부나 검찰 수뇌부가 재판이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혹은 커지고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된 검사들은 모두 고등검찰청으로 좌천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대구고검으로, 수사팀 부팀장 역할을 했던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은 대전고검으로 밀려났다. 이른바 '채동욱 찍어내기'에 반발하며 '법무부 장관의 감찰지시가 부당하다'고 공개 반박했던 박은재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도 부산고검으로 발령났다.

이렇게 되고 보니까 '국정원 사건'에 관련됐던 모든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은 셈이 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혼외 아들'논란이긴 하지만 국정원 사건으로 인해 찍어내기 당한 것이고,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도 윤석열 지청장과 외압논란이 결정적인 사퇴 이유이긴 했지만 국정원 수사로 '청와대에 찍혔다', '미운털이 박혔다' 이런 얘기들이 나돌았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국정원 수사팀과 갈등을 빚었던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인데 대구서부지청장으로 영전을 했다.

이진한 2차장은 지난달 26일 출입기자단과 송년회에서 술에 취한 채 복수의 여기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을 하면서 구설수에 올랐지만 '감찰본부장 경고'를 내리는데 그쳤다.

'감찰본부장 경고'를 결정했다는 것은 대검 감찰본부와 감찰위원회도 이 차장검사의 성추행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는 의미지만 경징계조차 내리지 않으면서 검찰 스스로 내부지침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12년 4월 출입기자단과의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기자를 성추행한 서울남부지검 최 모 부장검사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한 것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운털'이 박히면 찍어내기 당하거나 좌천당하고, 잘 보이면 잘못을 해도 적당히 봐주거나 넘어가는 검찰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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