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실체는 "앞으로 법무·검찰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검사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상은 적절히 쓰면 약이 되지만, 조금만 과해도 독이 된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29명의 부장 가운데 3명의 부장만 남긴 채 26명을 모두 지방으로 발령내는가 하면, 특수부 검사들을 전국 지방청의 형사부로 대거 '하방'시키는 등 기존의 인사패턴을 완전히 깨버렸다.
검찰 관계자는 "지방과 서울, 경향(京鄕)을 뒤섞는 인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인사는 현재의 자리에서 다음 자리가 어느정도 예측 가능했던 기존의 인사관행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것이어서 상당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와 황교안 장관, 김진태 총장이 모든 검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리를 뒤섞었지만, 이번 인사에서 은밀한 공격 포인트는 이른바, '특수부 검사들의 블록화'를 깨부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인사에서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다음 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니며, 이것은 지난 연말의 검사장 인사에도 해당되는 원칙이다. 누구든 능력과 업적에 따라 다음 자리가 정해질 것이며 지방도 중앙 못지않게 중요하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검찰 고위직 출신의 인사는 "검찰의 중간간부 인사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김영삼정부의 군 하나회 척결이다. 군 하나회와 특수부 검사들을 동일하게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현 정부는 특수부 검사들을 검찰 내 하나의 '특수 이익 집단'으로 보고 그들에게 본때는 보여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이번 인사의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특수부 한 검사의 말이다.
"'하방'이라는 인사 자체는 명분이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다가도 지방에 가는게 맞다고 본다. 지방 분위기를 '업'시킨다는 측면도 있고 중앙에서 쌓은 노하우를 지방에 전수한다는 느낌도 있다. 또 이번에 특수 검사들만 내려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검사를 비롯한 다른 검찰 관계자는 "정권과 조직에 순응하는 검사는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는 검사는 미래가 없다"라는 '노림수'가 이번 인사에 숨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다음 인사를 봐야한다. 이번에 지방에 내려보낸 우수자원들이 거기서 고생한 뒤에 다음 인사엔 요직에 등용해야 하는데 지방에 보낸 뒤에 내년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올리고, 미운 사람 다시 지방으로 떨치는 방식으로 아웃시킨다면 이번 인사가 특수라인 아웃을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봐야 할거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우려는 '기우'로만 보기 어렵다.
이번 인사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휘한 법무부 검사들과 일부 공안 경력검사들은 서울 중앙지검이나 대검 간부로 상당수 진입했다.
대검찰청 공안기획관과 범죄정보 1담당관에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과 조종태 범죄예방국장이 각각 진입했고, 서울지검 특수 3부장과 4부장에도 문홍성 법무부 형사법제과장과 배종혁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검사가 각각 배치됐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기회균등이라는 면에서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것이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중간 간부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경로가 예상돼야 고급 간부를 훈련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전제한 뒤 "검찰총장의 임기가 2년인데 이런식으로 인사를 뒤섞으면 누구도 경력 관리를 해 줄 수 없고 결국 정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총장과 장관을 지내며 잔뼈가 굵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고위간부 양성과정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겠지만, 검찰을 확실히 다잡는 것이 이번 인사의 목적이었던 같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집권 2년차 '인사' 앞에 또다시 무력함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