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모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기로 촉발된 '과거사 도발'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데 공감했지만 대응방향과 수위를 놓고는 온도차를 드러낸 것이다.
일단 한국 측은 이번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대한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이를 워싱턴 조야에 확산시키는데 주력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방미 계기에 일본 지도층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에 대해 우리의 엄중한 인식과 입장을 분명하게 충분하게 설명했다"며 "미국 조야와 의회의 고위인사들과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특히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역내 화해와 협력추세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sincere actions)'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정부의 입장을 케리 장관 이외에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비롯한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정책결정라인에 전달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또 의회와 학계 등 '트랙 2' 인사들과도 일본 과거사 문제를 놓고 심도있는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제프리 베이더 전 NSC 아·태담당 보좌관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실장 등 동북아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미국 측 인사들은 조야를 가리지 않고 '실망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며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기로 미·일간의 외교일정과 교류사업에 이미 적지않은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확인됐다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미국 측은 그동안 일본에 대해 수차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음에도 이 같은 사태가 빚어진데 대해 크게 실망했다는 반응"이라며 "이번 사태가 없었으면 있었을 수도 있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이런 기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측 인사들의 이 같은 공감표시가 과연 의미 있게 일본을 압박하는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국자들은 앞으로 미국 측이 일본에 대해 외교적 불만을 표출하는 다양한 '후속행동'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어느 정도 수위와 형태로 나타날지는 물음표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4월께로 예상됐던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순방 일정 등 대형 외교적 이벤트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존 케리 장관이 이날 공개 기자회견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맥을 같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양자 외교회담에서 제3국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결례'이기는 하지만 동북아 평화와 안정과 직결된 중대현안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사태 때에는 백악관은 물론 당시 해외순방 중이던 케리 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별도의 비판성명을 내놨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일본 과거사 문제와 안보협력을 분리하는 대응기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이 분명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동북아에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핵심적인 동맹파트너인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다만 미국으로서도 과거사 문제가 동북아 전략운용의 핵심축인 한·미·일 안보협력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보고 일본으로 하여금 '갈등해결'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선에서 '어정쩡한' 외교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주로 예정된 '아베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NSC 국가안보국장 내정자의 워싱턴 방문이 주목된다.
한국의 이번 대미 외교 결과에 따라 미국이 야치 방미를 계기로 일본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표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