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역시 486세대에 속하는 장 교수는 "민주화에 대한 연대의식을 지닌 486세대는 현재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에 걸쳐 있는데, 과거의 40, 50대와는 다른 경험을 한 이 세대의 정치적 선택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며 "486세대가 개인적 보수의 길을 벗어나 지금의 20, 30대와 연대하지 않는 한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첫 1000만 관객 동원이 점쳐지는 영화 '변호인'을 제작한 최재원(46) 위더스필름㈜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장 교수의 말이 떠오른 이유는 486세대로서 두 사람의 고민이 비슷하게 다가온 까닭이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변호인의 제작 의도에 대해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이타적인 삶을 선택한 사람의 삶을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막상 편집된 영화를 봤을 때는 힘든 시대를 뚫고 살아 온 모든 이들의 치열함이 먼저 다가오더군요. '요즘 젊은이들이 이러한 감정을 이해할까'라는 물음도 들었죠. 모교에 가서 특강을 할 일이 있었는데, 취업 스펙 고민에 매여 사회 문제를 뒷전에 둔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웠죠. 86학번인 제 학창시절 때와 괴리감도 컸어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산업이 분업화 할수록 이타적인 삶은 더욱 필요하잖아요. 미안함이랄까, 우리 세대에게는 그러한 삶을 온몸으로 보여 준 선배들이 있었는데 말이죠. 이러한 인식을 영화로 풀어보자는 마음이었죠."
치열한 삶의 표본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론을 맡았던 부림사건(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공안당국이 부산 지역 독서모임 학생 등 22명을 불법 감금 고문해 기소한 용공조작사건)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라는 것이 최 대표의 답이다.
다른 인권변호사들에 비해 가난 등으로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지만 상식적인 세상에 대한 신념을 지킴으로써 타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고 노 전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삶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단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전제조건이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최대한 빼자'는 거였죠. 전기 영화가 아니라, 상식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 주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니까요. 한 번은 촬영장에 박찬욱 감독님이 오셔서 '주인공에 이입되기보다는 내 감정을 툭 건드린다'고 했는데 '됐다' 싶었죠."
제작 단계부터 이 영화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개봉 즈음 불거진 정국 불안으로 일각에서는 "특정 이념을 담았다"며 영화적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움직임까지 일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만약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된 때 이 영화가 나왔다면 정권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가 됐겠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달라지는 만큼 이러한 접근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요즘 변호인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결국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죠. 관객들과의 교감이 원활해지고 진심을 공유하면서 색깔 논란이 물건너갔으니까요."
금융권에 있으면서 1998년 영화 투자 펀드를 만든 인연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장화, 홍련'(2003), '효자동이발사'(2004),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마더'(2009) 등 굵직한 영화들을 제작해 온 최 대표다.
그런 그에게도 변호인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영화로 다가온단다.
"이번에 수능을 본 딸과 중3 아들에게 제 대학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안 좋은 시대에 좋은 일을 하려 했다'고 뭉뚱그려 말하곤 했는데,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담긴 변호인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변호인을 만들면서 제가 살았던 1980년대에 대한 기억도 많이 떠올랐어요. 따지고 보면 30년이 채 안 됐는데, '과거를 잊고 살았구나'라는 죄책감도 들더군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과 동기들과 다시 만난 것도 그 죗값을 치르려는 실천이었던 것 같아요."
최 대표는 매주 토요일 경남 하동에 있는 절에 내려갔다가 이튿날 서울로 올라오는 생활을 10년째 해 오고 있단다. 사회적으로 큰 실패를 맛본 뒤 습관처럼 몸에 밴 행동인데, 변호인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절에서의 일화가 자주 떠올랐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번 때가 있었죠. 그러다가 넘어져 인생의 가장 쓴맛을 경험했을 즈음 그 절의 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됐어요. 8, 9년 전엔가 하루는 절을 나서는 데 스님이 뒤에서 부르시더니 '하루라도 남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냐. 어릴 땐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애가 정작 돈을 버니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사고 하는구나. 그게 다 다른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것밖에 더 되더냐'라고 하시는 거예요.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그 때 다시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었죠."
최 대표는 영화 변호인이 관객들에게 저잣거리에 앉아서 걸치는 탁배기처럼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변호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이 더해져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겠죠. 개인적으로는 변호인으로 인해 발가벗겨진 기분이에요. 영화를 하면서 문화를 선도한다는 우월감에 기댄 선민의식과 얄팍한 목적의식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라는 반성이 들거든요. 제작자로서 이 영화를 만들면서 몹시 행복했죠. 배우들, 스태프들과 소통 잘하고, 잘 먹고 잘 자면서 신나게 영화를 만들어야 그 기운이 관객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맞겨야죠. 결국 관객과 얼마나 공감하고 연대하느냐의 문제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