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탐지능력 급성장"…美 CTBT 가입론 고개

WP "북한 핵실험 거치며 기술진보"…시기상조론도 여전

북한에 대해 4차 핵실험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미국은 정작 유엔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 중 하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역대 행정부가 조약 가입을 공언해왔지만 보수 정치세력이 다른 나라의 핵실험 여부를 확실히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고 반대하면서 의회에 비준안 자체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핵실험을 탐지해내는 범세계적 시스템인 '국제탐지체계'(IMS)의 성능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조약 가입안이 의회 승인을 얻을 수 있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부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완성단계에 이른 IMS는 초기 설계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기술적 진보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유성이 성층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우르렁거리는 소리, 또 빙산이 파도에 부딪힐 때 나는 웅웅 거리는 소리까지 기록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한마디로 지구 전체를 도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CTBT 체제를 지탱하는 대들보 격인 IMS는 전세계 89개국에 걸쳐 형성된 270곳의 탐지소가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마치 '거대한 청진기'처럼 지진파와 저주파 음파를 탐지해내는 장비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오스트리아 빈의 CTBT 본부로 보내 분석작업을 진행한다고 WP는 전했다. 단순히 소리뿐만 아니라 대기 중의 방사성 물질을 포집해 핵실험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IMS의 '성장'은 2000년대 들어 세차례 걸쳐 단행된 북한 핵실험을 거치며 본격화됐다. 2006년 1차 핵실험 때 21곳의 탐지소 만이 핵실험이 있었다고 보고했지만 지난해 2월 3차 핵실험 때에는 보고한 탐지소 숫자가 94곳으로 늘어났다. 또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에는 대기권에 떠도는 방사능 입자를 정밀하게 포착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시스템 미비'를 명분으로 삼아 CTBT 조약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분위기다.

로즈 고테묄러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매우 인상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커지고 있다"며 "이제는 국가안보를 위해 CTBT를 가입하는 문제를 논의해야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고 WP는 보도했다.

CTBT가 조약비준권을 가진 상원에 상정된 것은 1999년 9월이 마지막이다. 국제조약을 비준하려면 상원의원 3분의 2(67표)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나 CTBT 비준안은 찬성 48표, 반대 51표로 부결됐다. CTBT 협상을 주도하고 다른 나라에 대해 조약의 서명과 비준을 설득해야 할 위치에 있던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이율배반적'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비준안에 반대한 공화당 의원 대다수와 적잖은 민주당 의원들은 핵실험을 검증할 시스템이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미국이 조약을 준수하더라도 다른 나라는 비밀리에 핵실험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IMS의 기술진보로 조약 비준의 큰 걸림돌이 치워졌지만 아직은 분위기가 무르익지 못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WP는 "의회내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인지, 그리고 일반여론의 지지가 충분한 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1999년 CTBT에 반대했던 리처드 루가 전 공화당 의원은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며 "(1991년 러시아와 체결한)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비준안 통과 때와 같은 진통을 겪을 것을 보이며 이번이 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CTBT는 161개국이 가입해있지만 미국을 비롯해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등 나머지 8개국이 서명과 비준을 하지 않아 아직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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