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후 조성된 '과거사 도발' 국면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나갈 것이냐를 둘러싼 고도의 신경전이다.
한국은 일본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여론흐름을 살려 진정성있는 태도변화를 압박하려하고 있고, 이에 맞서 일본은 미국을 달래며 상황을 수습해보려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사령탑인 윤병세 외교장관과 '아베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내정자의 이달 방미는 양국의 대미(對美) 외교전을 상징하는 양대 이벤트다.
물론 양측 모두 동맹·안보현안을 주된 의제로 삼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야스쿠니 참배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힘겨루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지배적 시각이다.
특히 다음주로 예정된 윤 장관의 방미는 시점이 절묘해 보인다. 오래전부터 조율돼온 방미일정이라는게 당국자들의 설명이지만 미국내 대일 비판기류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일본측 고위인사에 '한발 앞서' 성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방미를 통해 윤 장관이 한일 과거사 갈등문제와 관련해 나름대로 의미있는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없지 않다.
현실적으로 워싱턴이라는 국제외교·정치의 중심무대에서 일본을 압박하는 쪽으로 미국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는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갈수록 중요도와 비중이 커지는 미·일동맹의 특수성 때문이다. 재정난에 직면한 미국은 동북아 안보전략 운용의 '책임'을 일본에 상당부분 의탁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참배를 계기로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을 움직일 분명한 '명분'을 쥐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과거사 도발은 미국이 동맹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1일(현지시간) "미국이 지금처럼 일본에 대한 비판기류가 강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동맹의 초석으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용인하기 어려운 행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이례적으로 "실망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높은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그 형식은 주일 대사관과 국무부 대변인실을 통한 것이었다. 백악관은 아직 공식 입장을 표명한 바 없다.
따라서 윤 장관 방미를 계기로 한·미 고위급 대화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일본을 향한 미국의 '정리된 메시지'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흐름에 맞서 일본은 야치 내정자의 이달중 방미를 통해 '미국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방미는 야치 내정자가 '일본판 NSC(국가안보회의)'의 사무국인 국가안보국 초대 국장 자격으로 워싱턴에 취임인사를 오는 형식이다. 양국 NSC간 협력관계를 확인하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등 안보현안이 주된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방미는 야스쿠니 참배에 강한 불쾌감을 보이는 미국을 어떤 식으로든 달래보려는 의미가 보다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후텐마 기지이전과 같이 안보와 관련한 '숙제'를 풀어주는 식으로 상황수습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동북아전략 운용의 양대축으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난감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사'와 '안보협력'을 분리대응한다는 기조 속에서 사안별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메시지가 혼선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으로서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이익도 포기하기 어렵다"며 "한·일 양국이 갈등을 서로 자제하는 쪽으로 노력해달라는 쪽으로 설득노력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이번 방미외교전은 올 한해 역내 안보현안에 대처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온도'와 '풍향'을 점쳐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