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바이에는 27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교도소내 처형장에는 외국인이나 미국인이 참관하지 않았으며 점퍼와 흰색 셔츠 차림으로 처형장에 들어선 후세인이 평범하고 느긋한 모습이어서 두려움의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루바이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은 보통 '신이여, 저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제가 당신께 갑니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979년 대통령이 된 뒤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을 받아 축출될 때까지 24년 간 이라크를 철권통치한 후세인은 고향인 티크리트의 한 농가 지하토굴에 은신해 있다가 2003년 12월 미군에 생포됐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집권중 시아파 주민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고 생포된 지 3년 17일 만인 2006년 12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수갑이 채워진 채 코란을 들고 있는 후세인을 판사실로 데려가자 그는 기소목록을 읽어가며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팔레스타인이여 영원하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루바이에는 전했다.
후세인은 또 처형실로 들어서는 순간 멈춰선 뒤 교수대를 보고는 "선생, 남성용이네"라고 했다.
후세인이 교수대에 오르려는 순간 발이 묶여 있던 탓에 루바이에와 집행관들이 후세인을 단 위로 끌어올려야 했다.
참관자들은 후세인이 집권시절 처형한 반대파 인물 등을 언급, '이맘 모함메드 바크르 알 사드르여 영원하라' 등을 외치며 후세인을 조롱했고 후세인은 "이것이 남성다움인가"라고 물었다.
후세인은 처형 직전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무슬림의 신앙고백을 암송하기 시작했으나 "모하마드는 알라의 사자"라는 마지막 구절을 암송하기도 전 목숨이 끊어졌다.
루바이에는 교수대에서 후세인의 시신을 수습, 흰 자루에 넣어 들것에 실은 뒤 미군 헬기편으로 바그다드내 특별경계구역인 그린존내에 있는 누리 알 말리키 총리 관저로 향했다.
그는 당시 헬기안이 사람들로 붐비고 후세인의 시신이 놓인 들것이 너무 커서 들것을 기내 바닥에 놓은채 비행기문을 열어놓고 비행했다고 소개했다.
루바이에는 이 인터뷰에서 말리키 총리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화상회의후 후세인 처형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이 범죄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요"라는 부시 전 대통령의 물음에 말리키 총리가 "우리가 그를 교수형에 처할 것이요"라고 답하자 부시가 손가락을 치켜들어 동의를 암시했다는 게 루바이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