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유엔군 차원의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정무적 판단이 결여된 결정으로 일본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남수단의 내전 상황이 우리 장병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실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 정부의 안일한 상황의식 또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 한국군 안전 문제인데…선수치는 日, 한발 늦은 韓
한빛부대가 남수단에 파견된 일본 자위대로부터 5.56mm 실탄 1만발을 지원받을 예정이라는 소식은 지난 23일 우리 정부가 아닌 일본에서 먼저 타전됐다.
이에 국방부는 "일본이 실탄 지원을 최종 결정하면 우리 정부에서 이를 알릴 계획이었는데 일본 언론에 먼저 보도됐다"고 해명하며 "실탄 지원은 유엔 차원의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기대와 달리 일본 정부는 이 때부터 적극적으로 실탄 지원과 관련한 논란을 증폭시키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4일에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까지 나서 "한국 정부가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실탄 제공을 요청했다"며 유엔차원 보다는 국가대 국가간 지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같은날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도 남수단 파병 자위대 책임자의 입을 빌어 한국군 현지 부대 책임자인 대령이 전화를 통해 실탄을 빌려 달라는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실탄 지원 요청과 결정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하며 "유엔차원의 지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이미 커질대로 커진 상황이었다.
◈ 日 집단적 자위권 논리 강화 '절호의 찬스'
일본이 외교적인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실탄 지원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다른 주장을 펴는 이유는 이번 사안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더없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동안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하며 내놓은 논리 가운데 하나가 PKO 파견 부대 등에서 상황이 시급할 경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 무기수출 금지, 전수방위 논리 때문에 이것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집단적자위권 행사 추진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한국군이 자위대에 실탄지원을 요청한 것은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할 수 있는 호재 중에 호재라 할 수 있다.
이에 일본은 최근 신설한 NSC를 가동하며 일사천리로 실탄 지원을 결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물론 '국가대 국가 지원'이라고 우리 정부와 다른 주장을 펴고 이는 것.
반면, 우리 군은 뻔히 예상되는 이같은 일본의 의도에 대한 정무적인 판단없이 "유엔 차원의 결정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만 강조하며 실탄 지원을 승인해줬다.
이 과정에서 합참의 상황평가회의는 물론 청와대 김장수 안보실장 주재 회의에 이 안건이 올라왔지만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논의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돌발상황에 최소한의 방호력도 갖추지 못한 한빛부대
실탄 지원을 빌미로 한 일본의 노림수에 당한 것과 별개로 우리 군이 '장병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와 관련해 한치 앞의 상황도 내다보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나오고 있다.
남수단은 수단과 50여년간의 내전 끝에 지난 2011년 7월에 분리 독립했지만 종족간 갈등이 계속돼 왔고, 그러다 지난 15일 수도 주바에서 종족갈등으로 총격전이 벌어지며 삽시간에 내전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한빛부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방호력 강화에 필요한 정도의 실탄도 보유하지 못해 지난 21일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에 탄약 지원을 요청하게 된 것.
국방부는 이에 대해 "우리 파병을 그동안 20년 해 왔지만 한 번도 이런 상황은 발생된 적이 없다"며 그간 파병의 경험치에 의해 적정량의 실탄을 준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규모의 공병부대를 파견한 일본은 충분한 실탄을 보유해 한빛부대에 지원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이같은 해명은 그동안 우리 해외 파병부대가 최소한의 방호력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다.
이와 관련해 4성 장군 출신의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일본 자위대는 우리보다 안전한 지대에 있는데도 실탄을 충분히 확보했다"며 "우리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