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총리는 패전일인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하지만 미키 총리는 자신의 참배가 '사적 참배'라며 공용차를 쓰지 않고 신사를 참배할 때 봉납하는 공물료(다마구시<玉串>료)도 사비로 냈다.
총리가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 논쟁 등을 감안해서다.
그후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 등이 이런 참배 형식을 빌려 8.15 참배를 단행했다.
일본 총리가 8월15일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강행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처음이다.
그는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15일 두 명을 제외한 각료 전원을 대동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당당히 찾아 공식 참배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당시 나카소네 정권의 공식 참배는 한 번으로 끝났다.
야스쿠니 신사에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강행된 일본 총리의 공식 참배에 항의해 한국,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 후 1992년 11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등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그러나 미야자와 총리는 당시 참의원 선거 과정에서 자민당이 내건 '참배 공약'을 둘러싼 '일본유족회'의 압력에 밀려 일정 등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참배를 마쳤다.
이후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하시모토 류타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총리뿐이다.
하시모토 총리는 1996년 야스쿠니를 참배함으로써 '나카소네 참배 파문' 이후 잠잠했던 야스쿠니 참배 문제가 다시 외교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유족회 회장과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을 역임했던 하시모토 총리는 당시 신도 참배 형식을 취했으나 공물료는 내지 않았다.
하시모토 총리 역시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 후로는 참배를 단념했다.
아시아 피해국의 반발로 수면 아래로 들어갔던 야스쿠니 참배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출범하면서 다시 부활됐다.
'반드시 야스쿠니를 참배한다'고 약속해, 일본유족회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고이즈미 총리는 5년 5개월의 재임기간 매년 야스쿠니를 참배하다가 집권 마지막 해이자 퇴진 약 1개월 전인 2006년 자신의 총선 공약이었던 `8.15 참배'를 단행했다.
재임 중 6차례 참배한 것이다.
2006년 9월 1차 집권한 아베 총리는 2007년 4월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 때 신사 제단에 바치는 화분 형태의 제구인 '마사카키'(眞신<木+神>)공물을 봉납하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했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씨 등 민주당 정권하의 총리 3명은 재임 중에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