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집권당, 검·경의 수사 독립성 훼손 파문

기자의 경찰서 출입도 금지…"알권리 침해" 비판

터키 헌정 사상 최대의 비리사건 수사로 타격을 받은 집권당이 검찰과 경찰의 수사 독립성을 훼손하는 조치를 기습적으로 도입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집권당은 또 기자들의 경찰서 출입도 제한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와 자만 등은 23일(현지시간) 정의개발당(AKP) 정부가 경찰이 검사의 지휘로 수사에 착수하면 상관에 보고하는 의무를 부여한 사법경찰관 관련 규칙을 개정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자체 수사 인력이 없어 경찰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개정된 규칙에 따라 앞으로 모든 수사는 경찰이 소속된 내무부에 보고되므로 수사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지난 17일 검·경이 뇌물과 건축허가 비리 등의 혐의로 체포한 주요 인사 52명 가운데 무암메르 귤레르 내무장관의 아들도 포함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이번 수사를 사전에 보고받지 못한 것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뷸렌트 아르츠 부총리도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귤레르 장관이 아들의 체포 소식을 가장 나중에 듣고 슬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귤테킨 아브즈 전직 검사는 자만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개정안은 사법 독립성을 훼손하고 수사권을 행정부에 넘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부터 정부 관리가 뇌물을 받은 사건을 조사한다면 경찰서장은 수사 초기부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며 "이런 수사 체계는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검사가 신청한 감청 영장을 법원이 발부할 수 있는 권한도 제한했다.

검경은 1년 정도 용의자들의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감청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직 장관 3명의 아들 등을 체포할 수 있었다.


이번 수사를 "더러운 작전"이라고 비난한 에르도안 총리는 경찰과 검찰을 겨냥해 "국가 내부에 갱단이 있다"고 말했으며 정부는 전날까지 이 수사와 관련한 경찰 간부 113명을 직위해제했다.

경찰이 전날 갑자기 기자들의 경찰서 출입을 금지한다며 경찰서 안의 기자실을 비우라는 발표도 비난을 받고 있다.

경찰은 앞으로 기자는 경찰서에 기자회견을 할 때만 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터키기자협회는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도 이런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분 74%를 보유한 터키항공은 이번 사건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신문인 자만(영문판 포함)의 기내 제공서비스를 중단했다고 도안뉴스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에르도안 총리와 이슬람 사상가인 페툴라 귤렌 간의 권력 다툼 양상으로 귤렌 지지층이 보유한 자만과 부균 등은 뇌물 사건과 관련한 녹취록과 사진을 폭로하면서 집권당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도 집권당은 정당성을 잃었으므로 내각이 사퇴해야 한다는 공세를 이어갔다.

공화인민당 케말 크르츠다로울루 대표는 전날 "터키공화국 건국 이래 부패를 옹호하는 총리는 없었다"며 "총리는 지금 뇌물을 받은 자를 방어하고 있으므로 적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총리가 경찰과 검사를 '갱단'이라고 지칭했는데 어떻게 국가의 경찰과 검사를 갱단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며 "11년간 집권한 총리가 갱단을 임명했다는 뜻인데, 이들이 갱단이라면 정부가 갱단"이라고 주장했다.

집권당의 비리에 항의하는 시위도 계속 일어났다. 전날 이스탄불 카드쿄이에서 수백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시위대가 돌을 던지자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압했다.

이스탄불 연고 프로축구팀인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시의 응원단도 경기장에서 "모든 곳이 부패했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지난 5월 말부터 일어난 전국적 반정부 시위의 구호 "모든 곳에서 저항한다"를 바꾼 것이다.

한편, 국책은행인 할크방크는 이란과 불법 자금거래와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행장이 체포되고서 처음으로 공식 성명을 내고 이란과 불법으로 거래한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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