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영국의 대처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룩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앓는 중병을 고쳐 놓겠다”고 말한 바 있다.
대처 총리는 1979년 영국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첫 여성 수상이 된 뒤 신자유주의, 보수주의, 반공주의, 반노동조합주의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처리즘’(Thatcherism)은 각종 규제완화와 경쟁 촉진 등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민영화와 노동조합 강제 진압 등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12일째 이어지고 있는 철도파업에 대해 현 정부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에서 1980년대 영국 광산 노동자들을 탄압했던 ‘대처리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 영국 대처리즘 '타협 없는 밀어붙이기, 가난해진 영국 국민'
대처리즘은 방만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처 총리가 집권했던 시기에 영국의 가스와 전기, 통신, 수도, 석탄, 철강, 항공, 자동차 등 정부 소유 기업들이 대부분 민영화됐다.
이 과정에서 공기업 노동자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노조 파업이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 1년 가까이 진행된 광산 노조 파업이다.
결국 대처 총리의 무 대응 강경진압 원칙에 노조가 백기를 들면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노조원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하는 등 사회적 피해가 너무나도 컸었다.
영국은 공기업 민영화로 재정수입이 늘고 자본시장이 크게 발전하면서 대처 총리 이후 1997년 집권한 노동당 정부 10년 동안 연 3%대의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했다.
하지만 1990년 대처 총리가 퇴임할 때 영국의 어린이 가운데 28%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지니 계수(소득분배 불평등도, 0.4 넘으면 최악의 소득분배)가 1979년 0.25에서 1990년 0.34까지 증가하는 등 사회 양극화라는 실패작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철도노조가 지난 9일 파업을 시작한 뒤 12일째를 맞았지만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댄 것은 지난 13일 실무교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화와 소통, 협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와 코레일은 파업 이틀만에 노조원 7천여명을 직위해제했다. 또 검찰과 경찰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위원장 등 집행부 간부 25명에 대해 검거에 나섰다.
정부는 처음부터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벌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지, 철도노조와 대화할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영국의 대처총리가 지난 1984년 광산노조 파업을 공권력으로 밀어붙이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지난 17일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탄광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분열’과 ‘갈등’의 ‘대처’식 정치를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쉽연구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총리처럼 큰 원칙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노동조합의 경우 지금은 선진화된 측면이 많다”며 “대화와 원칙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판 신(新) 대처리즘 확산되나
대처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혁 정책 가운데 하나가 공기업 개혁이다.
국내 공기업 총부채가 565조원으로 국가 부채를 이미 넘어선 상태이지만 직원 복리후생비로 연간 1인당 수 천만 원을 지급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파티는 끝났다”며 “내년부터 부채가 늘어난 공기업 사장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 혁신뿐 아니라, 규제개혁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식품과 건축, 산업 등 6,117건의 규제 사항을 신규 발굴해 완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이어 최근 영리화 논란을 빚고 있는 의료법인 설립도 밀어붙일 기세이다.
원칙을 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대처총리의 국정운영 방식이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전문가들 "사회적 소통, 합의 없다면 실패할 것"
민영화 논란을 빚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영리화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의료법인화 추진 등 정부 정책이 강공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적 합의와 소통 없이 정책을 추진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의료법인 설립과 관련해 의료업계는 “이 사업이 추진돼 의료법인 자회사가 만들어지면 수익사업에만 치중해, 결국 병원 이용료가 높아 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의료법인화 추진은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과 직결된다”며 “박근혜 정부가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최진 대통령리더쉽연구소장은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포함해 사회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 매우 어려워질 수 도 있다”며 “원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에 대해 “‘대처’식 정치보다는 독일의 장래를 위해 총리 신분으로 사민당을 직접 찾아가 17시간동안 협상을 벌여, 사민당이 요구하는 전국 단위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인 메르켈 총리의 포용의 리더십과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롤 모델로 삼으시기를 권고 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