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통큰' 지원 정책으로 우크라이나 끌어안기(종합2보)

"가스공급가 대폭 인하, 150억 달러 경제 지원 결정"

러시아가 유럽연합(EU)과의 통합 과정을 보류한 우크라이나를 옛 소련권 경제통합체로 끌어들이고자 '통큰'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를 방문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가를 기존의 3분의 2로 인하하고 우크라이나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먼저 "국제 경제 위기의 여파에 따른 우크라이나 시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가스프롬'(러시아 국영가스회사)과 '나프토가스'(우크라이나 국영에너지회사)가 러시아 천연가스의 우크라이나 공급가를 1천㎥당 268.5달러로 낮추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했다.

양국 에너지 기업은 지난 2009년 체결한 10년 장기 가스 공급 계약서에 보충 협정을 서명해 추가하는 방식으로 가스 공급가 인하에 합의했다. 올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산 가스 평균 수입가는 1천㎥당 404달러였다. 러시아가 1천㎥당 130달러 이상을 깎아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하된 가스 가격은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그동안 가스 공급가 인하에 대한 우크라이나 측의 요구에 줄곧 거부 입장을 밝혀왔다.


이 같은 할인 조치와 관련 푸틴 대통령은 "한시적 조치이며 장기적 합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부총리 유리 보이코는 이 할인 가격이 2019년 본계약 종료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간접 투자 방식의 경제 지원 결정도 발표했다. 그는 "세계 금융 및 경제 위기와 상당 정도 연계된 우크라이나의 경제난을 고려해 러시아 정부가 국가복지펀드(국부펀드의 일종) 기금 15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 국채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소개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유로 표시 국채를 발행하고 러시아가 국가복지펀드 기금을 이 채권에 투자할 것"이라며 "일부는 올해 중에 일부는 내년 중에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당장 이번 주말까지 30억 달러 상당의 2년 만기 우크라이나 국채를 매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우크라이나는 EU와의 협력 협정 체결 조건으로 요구했던 경제 지원을 러시아로부터 먼저 받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지원은 연금이나 보조금, 월급 등을 인상하거나 낮추거나 동결하는 등의 어떤 조건과도 연계된 것이 아니다"며 경제 지원에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앞서 우크라이나가 EU와 협력 협정 체결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100억 달러의 차관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주민들의 가스 및 난방비를 40% 가까이 인상하고 월급 및 최저 임금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며, 예산 지출을 크게 삭감하는 등의 우크라이나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조건들을 제시했던 점을 비꼰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우크라이나가 EU나 옛 소련권 경제통합체인 '관세동맹'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택하는 문제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서 "오늘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관세동맹 가입 문제를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수석)도 "양국 협상에서 상호 협력 강화 문제만 논의됐다"면서 "러시아의 기본 입장은 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순수성'을 역설한 것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이날 양국 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합의가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며 감사 의사를 표했다.

러시아가 대규모 지원 정책으로 우크라이나 환심 사기에 선수를 치고 나오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EU와의 협력 협정 체결과 러시아 주도의 옛 소련권 관세동맹 가입 사이에서 선택을 저울질하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EU와의 조속한 협력 협정 체결을 요구해오던 우크라이나 야권의 입지도 약해졌다.

하지만 EU로의 통합을 원하는 우크라이나 야권이 옛 소련권 관세동맹 참여에 여전히 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의 최종 결정은 수월치 않아 보인다.

키예프 시내에서 3주 이상 이어지고 있는 야권 시위를 이끄는 최대 야당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아르세니 야체뉵은 이날 러-우크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대통령이 관세동맹 협정에 서명하지 않도록 하는 성과를 얻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서명한 모든 문서에 대한 보고를 그로부터 듣길 원한다"며 대정부 공세를 계속 펼 것임을 예고했다.

우크라이나가 EU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미국도 이날 정상회담 결과에 불만을 표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의 일부로서 민주주의와 번영을 누리길 바라는 자국민의 열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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