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우리 사회 주요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는데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그 것이었다.
특히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승부수로 내 건 것이 중간층 표심을 끌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대선이 끝난 뒤 재벌들은 보수 정권이 연장됐음에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지만 대선 1주년을 이틀 앞두고 박 대통령이 전경련을 찾음으로써 재벌들은 현정권이 역점을 두고 있는 경제살리기와 경제활성화, 일자리 창출의 핵심 파트너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됐다.
이는 "미래 대한민국의 '창조' 역량을 끌어올리면서 함께 땀 흘리는 '협동'의 중심에 서서 '번영'의 미래를 이끌어 가길 바란다"는 이 날 박 대통령의 준공식 축사에서 잘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축사에서 언급한 '협동', '창조', '번영'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전경련 회관이 지어질 때 선물한 친필 휘호다.
박 대통령은 신축회관 준공식 뒤 전경련 회장단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도 대기업의 '책임'보다는 '역할'에 무게를 뒀다.
"경제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며 "여러분이 기업가 정신으로 투자하고 도전하신다면 정부는 적극 뒷받침을 해 드릴 것"이라고 당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6일 당선인 신분으로 전경련을 찾았을 때 한 말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대기업 총수들을 앞에 두고 "대기업도 좀 변화해 주시길 바란다"며 "대기업의 경영 목표가 단지 회사의 이윤 극대화에 머물면 안 되고 우리 공동체 전체와의 상생을 추구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해 엄청난 변화를 예고했다.
일주일 전에 미래권력으로 선출된 박 당선인의 이 말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봇물을 이뤘고, 재계는 긴장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정권과 재벌의 불편한 관계는 길지 않았다. 7월 10일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실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중점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6월국회)에 통과됐다"며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다음달 6일 여름 휴가뒤 가진 첫 국무회의 석상에서 "하반기에는 적극적인 경제살리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데 이어, 그 달 28일에는 10대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친기업 행보에 들어갔다.
국내에서와는 달리 해외 순방때는 경제인들이 대규모 경제사절단으로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면서 정권과의 교감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미국 중국 순방때는 주요 그룹 재벌 총수들이 대거 동행해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대선 1년여 만인 이 날 박 대통령이 전경련을 방문해 대기업들을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포용함으로써 앞으로 재벌위주의 대기업들은 국정의 주요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 대통령의 부쩍 강화된 친기업 색채는 지난 2월 대통령 취임 직전 한국노총을 한차례 방문한 이후 노동계와 별다른 대화의 자리를 갖지 않고 있는 모습과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