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한국 중국 싫어 유럽으로 간다

관광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재현

중국의 부상과 한일 관계의 경색 등 동북아 국제 정세가 요동치면서, 일본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도 한국과 중국 대신 유럽과 미주 지역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간다’

150년 전 메이지 시대, 일본의 서구적 근대화와 국가 발전을 추동한 이른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이다. 한국과 중국 등 인근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을 지향한다는 정체성 선언인 셈이다.

최근 일본 사람들의 해외 방문에서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나 미주를 선택하는 흐름이 갈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때 한류 바람을 타던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관광 매력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일본의 전체 해외 방문객은 1310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가량 감소한 수치이다.

이처럼 일본의 해외 관광 소비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데는 아무래도 일본의 경기 침체와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구매력 감소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의 해외 방문 실태를 좀 더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드러난다.

일본의 전체 해외방문이 7.4% 가량 줄 때 한국과 중국 방문은 상대적으로 더욱 감소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한국이 24%, 중국은 25.5%나 줄었다.

반면 괌과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캐나다 등 미주의 경우 지난해 13.4% 증가한데 이어 올 3월까지 5.3% 증가해 상승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도 지난해 5% 증가한데 이어 올 5월까지 1% 증가하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요컨대 한국과 중국을 떠나 유럽과 미국을 선택하는 이른바 ‘관광의 탈아입구’인 셈이다.

아시아에서도 동남아시아가 다르고, 중화권 중에서도 타이완과 홍콩 싱가포르가 각기 다른 양태를 보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과 중국 방문이 하락세이지만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방문은 지난해 18% 증가한데 이어 올 3월까지 15% 늘어나는 등 증가세로 나타났다.

중화권에서는 중국과 거리를 둔 타이완이 지난해 11% 증가 올 8월까지 5.8% 정도의 감소, 싱가포르가 지난해 15% 증가 올 3월까지 13% 증가 등 상승 기조를 보인 반면, 중국 직속의 홍콩은 지난해 2.3% 감소 올 7월까지 23.2%의 감소 등 상대적으로 하향 기조를 보였다.

이처럼 일본 사람들의 한국과 중국 방문이 유독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중국이 지역 내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한일 관계가 경색되는 등의 동북아 국제관계도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요동치는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 일본 사람들의 국가 호감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본 사람들의 한국과 중국 방문이 감소하는 이유는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구매력 감소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요동치는 동북아 국제 정세가 평범한 일본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의 경우 지난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 발언에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 발언이 맞물려 급격히 경색된데 이어 아베 내각의 출범 이후 1년 동안 더욱 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이런 와중에 일본 내각부의 외교 친밀도 여론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58%가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하고, 한국의 동아시아 연구원 조사에서도 76.6%가 일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런 가운데 대중들의 감정을 직접 자극하는 일본 주간지들은 연일 한국 때리기 행태를 보이며 혐한론(嫌韓論)을 유포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중일 3국의 정치 외교가 갈등을 빚으면서 일반 사람들의 호감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다시 상층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구조가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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