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학대의 시간이 쇼타임이라구?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동물에게 필요한 것은 공간이다. 걷고 뛰고 날고 헤엄칠 공간이 필요하다. 특히 야생의 동물은 신체리듬과 계절에 따라 멀리 이동하고 긴 시간 쉬는 것이 필수적이다.

동물이 우리에 갇히고 줄에 묶이는 것은 그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동물은 비정상 행동을 보인다. 머리를 아래 위, 좌우로 흔들고 종종거리며 맴돌고 마구 핥아대고 물어뜯는다.

우리는 동물은 으레 그러나보다 여기며 지나친다. 갇혀 있는 동물은 언제나 비정상 상태이다. 크든 작든 비정상적인 행동을 늘 보이고 있는 중이다.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자학행동으로 동물 스스로가 다쳐야만 비정상 행동으로 보는 것은 인간중심의 사고이다.

그런 상태에서 동물이 인간을 살상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사망 사고만 간추려보자.
2009년 시월드에서 범고래가 공연 중에 조련사를 수조 속으로 끌고 들어가 숨지게 했다. 2008년 4월 영화 출연을 위해 회색곰을 훈련시키다 조련사가 목숨을 잃었다.

서커스의 호랑이가 공연 중 조련사를 숨지게 한 사고는 2003년, 2001년, 2000년, 1998년 미국과 인도 등에서 발생했다. 2007년 호주에서, 그리고 2005년 1월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조련사를 밟아 숨지게 했고, 1994년에 같은 유형의 사고를 일으킨 코끼리는 경찰이 쏜 총알 80여발을 맞고서야 숨졌다. 이것들을 야생동물들의 야만스런 비정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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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의 시간이 쇼 타임이라구?

인간이 오락과 관광산업을 위해 펼치는 비동물적인 수법들을 살펴보자. (로브 레이들로 저 ‘동물쇼의 웃음, 쇼동물의 눈물’ 참조)

인도의 거리에서 펼쳐지는 뱀쇼. 뱀은 피리의 진동 때문에 위협을 느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송곳니를 빼 독의 위험을 없앴지만 독사가 독이 없다면 쇼에서 버려졌을 때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 인도 정부는 코브라쇼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인도의 춤추는 곰 쇼는 곰의 코를 뚫어 고삐를 채우고 발톱.이빨을 뽑은 채로 뜨거운 철판 위에 올려놓고 훈련시킨다. 뜨거우니 두 발로 서고 겅중겅중 춤추듯 움직여 동작을 익히게 된다. 곰은 이렇게 춤 아닌 춤을 추며 몇 년 돈을 벌어주다 숨진다.


뉴질랜드에는 가재 뽑기 오락이 있었다. 우리들 인형 뽑기 기계처럼 수조 속 가재들을 기계로 잡아 올리는 경품놀이이다. 가재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잡혔다 풀려나기를 반복하다 최근에 해방됐다.

돌고래는 야생 상태에서 쇼에 팔아넘기기 위해 포획된다. 가족생활을 하는 돌고래가 사로 잡혀 격리된 채 지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잡히는 과정에서 숨지고 잡혀 옮겨지다 숨지는 비극이 이어지고 간신히 살아남은 돌고래가 무대에 오른다.

물고기 몇 마리 얻어먹겠다고 사람들을 등에 태우고 반복해 하늘로 치솟아야 한다. 작은 수조에 가두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가혹행위이다. 사람들은 돌고래가 늘 웃으며 즐거워한다고 착각하지만 돌고래는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없어서 늘 그 표정으로 지낼 뿐이다.

뱀과 같은 파충류는 인간이 만지면 신체기능이 정상으로 돌아 올 때까지 푹 쉬어야할 정도로 민감한 동물이다. 고통스러워도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격한 행동을 보이지 못한다. 그런데 텔레비전과 쇼 무대에 등장하고 사랑한다며 몸에 감는다.

동물이 순종하며 따르는 건 말을 안 들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고통이 따를지 알기 때문일 뿐 결코 자신의 삶을 그리하도록 동의한 바 없다. 이것을 보여주는 게 아이들에게 교육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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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을 불법적으로 벌여 온 사람들이 최근 무더기로 구속됐다. 동물을 학대하며 돈벌이를 하는 것 중에 가장 참혹하고 야비하다 비난 받는 종목이 투견이다. 싸움도 처참하지만 투견들은 싸움에 나서기 전 훈련 과정에서 더 가혹한 행위를 겪는다. 공격성을 키우려 굶기고 물어뜯는 연습을 하라고 작은 개를 우리에 넣기도 한단다. 이겨서 돈을 벌어주든 져서 불구가 되든 그들의 마지막은 식당주방이다.

투우는 스페인, 포르투갈,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에서 벌어지는데 해마다 약 25만 마리 수소가 희생된다고 알려져 있다. 중앙 아메리카, 필리핀에서는 투계, 닭싸움이 유명하다. 사슬에 묶인 곰을 개들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bear baiting 곰 괴롭히기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인데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행해진다고 한다. 말싸움도 있다. 필리핀에서 수컷 두 마리가 발정기 암컷 한 마리를 두고 싸우는 경기를 지역 방송사들이 중계방송도 한다고 한다. 물론 법으로는 금지돼 있다.

◈ 죽음을 부르는 철망 속의 동물과 사람

살아 있는 동물을 이용한 오락과 관광은 사라져야 한다. 구경하지도 말자. 동물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갖춘 합법적인 동물원, 그 이상은 중지하자. 야생동물은 잡아서 곁에 두지 말고 자유롭게 살게 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자. 궁극적으로 우리가 유지시켜나가야 할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이다.

동물은 아파도 하고 편안함에 잠겨들기도 한다. 삶에서 ‘지각력’을 발휘하고 감성에 의해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삶의 주체이고 행복할 권리를 지닌다. 물론 이것마저도 인간 중심의 사고이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들이 그들 방식대로 살 수 있게 인간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선 결코 안 된다는 더 적극적인 생태주의적 관점도 있다. 동물을 억압하고 그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며 충족되는 인간의 욕망은 이제 정당치 못한 것으로 대우받아야 하고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바탕에서 사육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시 생각해보자. 동물을 야생으로부터 강제로 끌고 나와 학대를 불러일으키는 야만적인 산업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왜 동물은 미쳐가고 사육사와 조련사는 그 앞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과연 사육사의 죽음은 관리가 잘못된 탓일까? 아니면 죽음을 부르는 철망 속에 동물과 함께 갇혀 지내야 했던 그 직업의 숙명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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