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미리 준비한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의 사전 협의 노력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일본 정부도 자국 민항기에 미칠 영향이 없다는 판단 하에 차분한 대응기조를 보였다.
다만 중국과 일본 매체들은 한국의 새 방공구역이 자국 정부가 기존에 설정해둔 방공구역과 겹치는 점을 소개하며 갈등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정부 "한국 노력 평가"
미국은 "한국의 노력을 평가(appreciate)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새 KADIZ 선포 직후 논평을 내고 "우리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책임 있고 신중한 방식으로 이번 조치를 추구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는 직접적으로 KADIZ 확대에 동의 또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노력을 긍정 평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지지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볼 때 '평가'한다는 표현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사키 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바이든 부통령이 6일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했을 때를 포함해 미리 미국 정부와 상의했다"고 강조했다.
사키 대변인은 또 "한국이 방공식별구역 조정을 국제 관행에 맞춰 추진하고 비행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비롯해 국제 공역에 관한 국제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특히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민간 항공기들이 혼란과 위협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이 앞으로도 역내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행동이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국제 관행과의 일치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중국의 조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3일 중국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상공을 포함하는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을 때와 달리 한국의 조치에 대해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한국의 이번 조치로 한일 방공식별구역이 일부 겹치게 된 데 대해 총리 주변 인사는 민간 항공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
또 방위성의 정무 3역(대신, 부대신, 정무관) 중 한 사람도 한국의 조치에 대해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는) 민항기에 대해 사전 비행계획을 내라고 하는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과 이 문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며 한국으로부터 사전 설명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다만 한중일 3개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일부 겹치게 된 상황이 새로운 외교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 정부는 향후 정세를 주시한다는 기류라고 지지통신은 소개했다.
또 NHK에 따르면 일본항공(JAL)은 한국의 새 방공식별구역이 한국의 관제공역(항공교통의 안전을 위해 항공기의 비행 순서, 시기 및 방법 등에 관해 당국의 지시를 받아야하는 공역)에 해당된다면서 지금도 한국의 관제공역을 지날 때 한국 당국에 비행계획서를 제출하는 만큼 한국의 이번 조치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도 대체로 팩트 중심으로 담담하게 보도하면서도 동북아 안보 불안지수를 높일 새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교도통신은 "이어도 주변 상공은 일·중·한 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형태가 돼 운용을 둘러싸고 지역의 불안정성이 커질 것 같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세 나라는 복잡한 갈등의 불씨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한국의 새 방공식별구역에 "중국과 한국이 관할권을 다투는 암초인 이어도와, 현재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돼 있는 마라도가 포함됐다"고 소개하고,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가 "일중한 3국의 새 외교 현안으로 발전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중국 매체들, 이어도 포함 사실 부각
중국 매체들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소식을 긴급보도하면서 한중간 분쟁지역인 이어도가 포함됐다는 점을 부각했다.
신화통신과 중국신문망 등은 이날 긴급뉴스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소식을 전하고 이어 한국 국방부의 발표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담은 속보를 내보냈다.
중국신문망은 속보에서 이번에 확대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는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 마라도, 홍도 등이 들어 있으며 한중간 분쟁지역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신화망, 중국광파망 등도 한국의 새 방공식별구역에는 한중간 분쟁지역인 이어도가 포함됐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별다른 논평을 내놓지는 않았다.
한국의 이번 조치가 지난달 23일 이어도를 포함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한 맞대응이라는 점에서 중국 관영매체들의 보도 톤이 관심을 모았지만 일단 당일 보도는 팩트 전달에 초점이 맞춰진 양상이었다.
중국 매체들은 또 한국 국방부가 사전에 미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가에 국방 및 외교통로를 통해 여러 차례 사전설명을 했다는 점도 보도했다.
◇서방 언론도 큰 관심
서방 언론도 한국의 조치를 신속히 보도하는 한편 동북아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일 dpa통신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발표로 촉발된 영토갈등이 한국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dpa통신은 연합뉴스를 인용해 한국이 이미 중국 측에 사전 통보 없이 이어도 영공을 비행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해군 해상초계기(P3-C)는 지난 2일 오전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인 이어도 주변을 초계 비행했다.
로이터 통신과 프랑스의 AFP통신도 일제히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되는 지역에 새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고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