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초조한 이 씨의 마음과는 달리,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안녕하세요 고객님? 지금은 문의가 많아 서비스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곧 연결해드리겠습니다"라며 차분하게 반복되는 안내 멘트뿐이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카드를 정지하고 결제 내역을 얼른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이 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녹음된 카드사 설명을 그대로 듣고 있다가 상황에 해당하는 번호를 누르는 것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해외 긴급 서비스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이 씨의 헛된 기대였다.
대기 시간에, 카드 분실 사실을 알리고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걸린 시간만도 무려 5분.
혹시나 잔액이 빠져나갔을세라 잔고 확인 요청도 했지만 "그것은 은행 업무이니 은행에 따로 확인하라"는 대답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전화가 돌려진 은행에서는 카드사에서 했던 똑같은 본인 확인 절차를 다시 반복해야만 했다.
이 씨는 "국내였다면 덜 당황스럽고 잔액도 ATM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낯선 해외니까 물어볼데도 없고 눈앞이 캄캄했다"고 토로했다.
연결만이라도 빨리 됐다면 그나마 불안이라도 해소됐을텐데, 카드사 연결조차 힘들뿐더러 연결이 되더라도 확인 절차가 복잡했다는 것. 이 때문에 통장 잔고에 문제없는 걸 모두 확인할 때까지 너무나도 불안했다는 게 이 씨의 얘기다.
이 씨가 잃어버린 두 카드를 모두 정지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모두 15분. 노르웨이 로밍 전화요금이 1분당 무려 3400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탄 로밍 요금'을 떠안게 됐다.
실제로 여행자 동호회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같은 불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여행자 카페에서도 이 씨처럼 '유럽 여행 중에 지갑을 잃어버려 카드 분실 신고를 했는데, 귀국해 고지서를 받아보니 전화비만 3만 원이 나왔다'는 한 여성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 여성 역시 상담실에서 전화를 받지 않아 요금은 요금대로 나오고, 속은 속대로 타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요금도 요금이지만 분실 신고 접수 자체가 워낙 길고 복잡하다보니, 그 동안 다른 사람이 카드를 부정 사용할까봐 우려된다는 불만도 많았다.
실제로 한국 소비자원에는 카드 분실 신고 과정을 간소화해달라는 요청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본인이 카드를 흘렸을 수도 있지만 도난당했을 수도 있는데, 카드 분실 신고 과정이 워낙 길다보니 그 와중에 누가 카드를 쓰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소비자 불만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해외 여행객 1400만 시대. 하지만 현재까지 카드 분실시 긴급 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국내 금융사 가운데 단 한 군데도 없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