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KBS2TV '추적60분'을 통해 억울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마약 누명 주부' 장미정 씨가 한 말이다.
장 씨는 남편의 오랜 지인에게 속아 코카인이 금강석인줄 알고 여행 가방을 옮겨주다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사범으로 체포됐다.
하지만 외교통상부와 재불한국대사관의 무관심 속에 무려 2년이나 낯선 땅에서 수감생활을 견뎌야했고, 2006년 한국 언론의 관심과 새로운 여론창구로 부상한 다음의 청원운동에 힘입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체포 당시 3살이던 딸은 그간 5살이 돼있었다.
장미정 주부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은 장 씨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을 당하고 절절히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을 전도연과 고수의 절절한 연기로 드러낸 영화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뜻하지 않게 범죄에 연루된 평범한 주부 송정연(전도연)이 낯선 땅에서 끝 모를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을 오가다 마침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부부의 사연 자체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휴양지로 유명한 카리브 해의 에머랄드 빛 바다도 단칸방 앞에서 세 식구가 함께 찍는 사진 속 미소만큼 눈부시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지원해야하는 외교통상부의 무성의한 행태는 다시금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 논란의 소지도 엿보이나, 실제로 당시 주불한국대사관은 장씨를 방치했고 심지어 "감옥에서 10년 살지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로 그녀를 불안하게 해 목숨이 오가는 위험에 몰아넣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송정연은 그저 나라 망신시킨 '마약 아줌마'로 치부돼 제대로 된 관심과 배려를 못 받는다.
통역서비스를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외면당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판결문을 프랑스 법원에 보내는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서 마약 아줌마의 재판은 하염없이 미뤄지고, 그 결과 구속기간은 속수무책으로 늘어난다.
방은진 감독은 극중 "당신의 대사관은 나쁘다"는 프랑스 판사의 입을 통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린 정부부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무슨 역할이건 제 옷처럼 편하게 소화하는 전도연은 등장하는 순간부터 평범한 우리이웃의 얼굴을 연기한다. 실제로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극중 딸을 연기한 아역배우 강지우와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실제로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나야요 여자교도소에서 실제 그곳 수감자, 교도관을 동원해 찍은 교도소 장면은 이국적이면서도 생생하다.
극중 헬보이로 불린 악명 높은 여자교도관은 살면서 결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녹록치 않은 해외 로케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전도연의 모습은 실제로 절망감에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장 씨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수가 연기한 남편 종배는 한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가진 것없이 착하기만 한 그는 아내를 돕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나 뾰족한 해결책을 못 찾는다.
변호사를 댈 돈이 없어 정부기관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하나 별다른 답변도 못듣는다. 어린 딸은 누나의 집에 얹혀있거나 담배연기로 가득 찬 후배의 PC방에 방치되기 일쑤다.
두 사람의 진전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다소 지루한 순간도 있으나 한국과 프랑스 다른 색깔의 두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부의 이야기는 차곡차곡 쌓여 후반부 자연스런 눈물을 자아낸다.
특히 방송국이 취재에 나서면서 두 사람은 마침내 재회를 하게 되는데, 영양실조로 초췌해진 아내가 남편의 애타는 목소리에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그런 아내를 안는 남편의 모습은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든다.
실제로 장씨는 카메라맨과 함께 나타난 남편을 보는 순간 '이렇게 보려고 안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고 한다. 평생 울 것을 그날 다 운 것 같았다는 말도 남겼다.
송정연의 암담한 심경과 달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풍광도 인상적이다. 방은진 감독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치유의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앞서 밝혔듯 눈 오는 옥탑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짓는 미소다.
방 감독은 “한 가족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따뜻한 방 한 칸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이 영화를 통해 그려내고 싶었다" 연출의 변을 밝혔다.
◈ "한국 판결문이 일찌감치 도착했으면"
장미정 씨는 파리구치소에서 3개월, 마르티니크 교도소에서 1년 그리고 가석방 상태로 현지에서 9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장 씨는 2006년 한 매체를 통해 언어문제 등으로 당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한 노릇이었다고 밝혔다.
유일한 통로는 대사관이었지만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감되면서 파리에서 비행기로 9시간 걸린다는 이유로 대사관 직원이 딱 한차례 면회를 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편지에 대한 답신은 하염없이 늦어졌다.
그녀는 마르티니크에서 자살도 몇 차례 시도했다고 고백했다. 그중 2005년 5월 대사관 관계자가 면회를 다녀간 직후가 가장 위험했단다. 형량을 얼마나 받을 거 같냐는 물음에 10년이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남편에게 죽는다는 마지막 편지도 쓴 상태였는데, 다행히 이틀 만에 깨어났다.
한국에서 잡힌 남편의 지인이 장미정은 단순가담자라고 증언해주면서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뻔했으나 판결문이 프랑스 법원에 도착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어영부영 흘렸다.
체포된 지 2년 후인 2006년 11월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프랑스 판사는 "한국 판결문이 일찌감치 도착했으면 더 일찍 집에 보내줄 수 있었다"며 징역1년을 선고했다. 장 씨는 이미 구치소에서 1년 이상을 보냈기 때문에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2005년 11월24일 판결문을 송부한 것으로 파일되어 있으나 등기로 송부하지 않아 프랑스측이 접수했는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증빙이 어렵다'고 밝혔다. 15세 관람가, 131분 상영,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