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방공식별구역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하고 나서면서 미국과 중국이 이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이날 오전 베이징에서 미국 상공인들과 만나 "중국이 최근 갑작스럽게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당연히 미국을 포함, 지역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전날 대화에서 매우 직설적으로 우리의 확고한 입장과 (중국에 건) 기대를 전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바이든 부통령은 시 주석과 이 문제를 논의할 때 '좀 더 폭넓은 맥락'에서 다뤘다고 부연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역내 지분 또한 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이 평화와 안보에 이바지하려면 더욱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작심한 듯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설정에 강력한 반대 견해를 공개 천명한 것은 대중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인 행동으로 풀이된다.
전날 시 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방공식별구역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아꼈다.
대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부통령의 발언은 익명의 미국 고위 관계자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데 그쳤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중에 수행 중인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제 긴장 완화 조치는 중국에 달렸다"며 "그것은 행동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날 시 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은 예정을 훨씬 넘긴 5시간의 회담 동안 CAIDZ 문제를 놓고 장시간 공방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는 대화의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이 문제가 논의됐고 시 주석은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이 정당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고수했다며 시 주석은 다만 바이든 부통령의 주장은 경청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5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중국 지도부는 방공식별구역 설치가 국제법과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 측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이를 존중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과 시 주석이 CADIZ 문제와 관련한 견해차만 확인한 가운데 미국은 척 헤이글 국방장관까지 나서 공식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나섰다.
헤이글 장관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가장 큰 우려는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일방적이고 즉각적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이뤄졌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현명한 행동의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바이든 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 중국의 언론자유 문제를 비롯한 정치·사회 체제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했다.
그는 미국 상공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숨쉬고, 자유롭게 말하고, 정설에 도전할 수 있고, 신문이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진실을 보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바이든 부통령은 또 미국과 중국은 아직 여러 점에서 이견이 있다면서 '미국 언론인들에 대한 처우' 문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로이터, 알 자지라 소속의 미국 국적 기자들이 중국에 비판적 보도를 하고 나서 상주 취재 비자를 받지 못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또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고위층과 기업인들의 유착 관계를 보도했다가 중국 내 단말기 판매 수입이 급감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
앞서 바이든 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 주중 미국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중국인들을 만나 "미국 어린이는 기존 체제에 도전할 때 처벌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다"며 "혁신은 자유롭게 숨 쉴 때, 정부나 종교지도자에게 도전할 때 가능하다는 걸 배우기 바란다"고 언급, 중국의 인권 탄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언론은 바이든 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바이든 부통령이 도착한 4일 칼럼에서 "일본의 도발에는 눈 감고 미국 정부의 과거 잘못된 일방적 발언만 한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 등 중국의 주류 매체들은 전날 시 주석과 바이든 부통령의 회담 소식을 전하면서도 미국이 CADIZ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사실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