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지주사 회장이나 은행장들이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란 것이다.
KB금융은 2008년 출범 이후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임영록 회장으로 이어지며 전원 외부인사가 회장을 역임했다.
국민은행의 경우는 2000년 주택은행과 통합 출범 이후 금융권 출신인 김정태, 강정원, 민병덕 행장이 한동안 맡아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 행장이 임명돼 역시 낙하산 논란을 낳았다.
정부의 지분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지배구조인 신한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에서 내부 출신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해온 것과는 딴판이다.
금융권에선 우선 태생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라응찬, 김승유라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있었던 반면 KB금융은 과거 정책금융이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정책적 이유로 합쳐진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국민과 주택은행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3자적인 역할을 행사했고, 딱히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CEO가 낙점 비슷하게 돼온 것이 굳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국민과 주택은행이 통합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완전한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내부갈등을 빚는 것도 외풍에 쉽게 흔들리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불거진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이나 국민주택채권 위조 및 회령 사건 등과 관련해 내부제보설이 흘러나오는 게 이를 뒷받침하는 극명한 사례다.
신한금융의 경우도 옛 조흥은행을 인수합병한 점에서 비슷한 사례지만, 국민과 주택은행은 거의 대등한 1대1 통합이어서 상대적으로 알력다툼이 더욱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호 행장이 최근 ‘1채널’(국민은행 출신)과 ‘2채널’(주택은행 출신)간의 불협화음을 지적한 것이 그 반증이다.
문제는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을 10여년째 게을리해왔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외풍에 취약하다면 이를 막아낼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며 누적돼온 병폐가 한꺼번에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장치는 신한금융이 외국 사례를 연구해 도입한 ‘CEO 승계 프로그램’이다.
이는 회장 교체기가 다가오면 내부적으로 정한 후보군을 대상으로 자기계발계획서 등을 제출하게 하고 지속적인 경영평가와 평판 조회를 한 뒤 선정하는 방식이다.
명확한 제도적 장치를 만듦으로써 외부의 부당한 개입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특히, 물망에 오른 후보들은 내부 줄서기 문화 방지 차원에서 후보 선정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에 정통성에 타격을 입어 외풍 차단은 물론 내부 장악조차 안 되고, 결국 다시 관치를 불러들이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온 KB금융으로선 참고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