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 산하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는 본회의가 1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련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혼부터 고용, 출산 인프라, 육아 시설, 교육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총체적 문제가 집약돼 있기 때문에 각 부처를 넘나들어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 감시할 수 있는 역할이 중요하다.
◈ 저출산 회의 1년에 한번 열릴까 말까…朴 대통령 한번도 안 열어
이같은 중재를 위해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복지부 장관 산하에서 대통령 산하로 격상됐지만 오히려 회의가 더디게 열리는 등 제대로 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1차 회의를 주재한 뒤로 정권이 바뀌면서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연말까지 열릴 계획도 없다.
이번 정권에서는 기초연금, 4대중증질환 국가보장 등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에 집중하느라 저출산 정책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두석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정권은 과거 참여정부나 MB정부보다도 저출산 분야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며 "지금이라도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출산율이 다시 1.1명대로 곤두박질치면서 4~5년전 수준으로 급감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실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한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1월부터 9월까지 출산율이 낮게 나온 건 맞지만 연말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최종 통계가 나오면 내년 초에나 정확한 진단이나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단발적인 정책들이 쏟아진 와중에도 이를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 꾸준히 감시, 관리하는 데에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조성남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들이 나온다고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생애 주기별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들이 꾸준히 조성돼야 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본부장은 "웬만한 제도들은 이미 많이 도입돼 있다. 이제는 각 제도의 질을 높이고 가다듬어야할 때이다"고 강조했다.
당장 듣기에 좋고, 솔깃하지만 현실 적용이 어려운 설익은 정책들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아휴직이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근간을 두고 있어 비정규직, 자영업자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해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육아휴직 기간의 급여율도 턱없이 낮다. OECD 국가 평균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에 임금 보존율이 80% 수준인데 반해 우리는 그 절반인 40%이다. 그나마 최대 100만원의 상한선이 존재한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모(31)씨는 첫째 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을 2개월 밖에 쓰지 못했다. 이씨는 "갓난아이가 눈에 밟혀 몇개월 더 쓸 생각도 했지만 당장 한달에 70만원 정도 받는데 육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친정 부모에게 맡기고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육아휴직을 쓰라고 외쳐봐도, 아빠는 엄두를 못내고 엄마도 1년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스웨덴, 캐나다 퀘백시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고용주, 근로자, 자영업자 등이 함께 출자해 '부모보험'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정 여건이 어려운 고용보험에서 모든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급여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 문제도 심각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기혼여성 971만3천명 가운데 20.1%인 195만5천명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이 단절됐다.
여성 경력 단절이 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담장자 3명에 컨트롤 타워 부재, "국가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야"
기존 제도를 꾸준하게 점검함과 동시에 범정부 차원의 저출산 대책을 강화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를 확실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산하에 저출산 정책 담당자는 과장 1명, 사무관 1명, 주무관 1명 등 총 3명에 불과하다.
복지부 출산정책과는 기저귀, 분유지원부터 영유아 건강, 중절예방, 산후조리 등 다양한 사업들을 병행하고 있어 체계적인 저출산 정책을 수립할 여건이 안된다.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산하 분과별로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올해에만 20여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본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아 아이디어 토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 때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30~40명 규모의 대규모 실무 기획단을 따로 조직해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도 현 정부가 참고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 미래가 흔들린다는 정부의 각성이 필요하다.
최근 OECD가 발간한 2013년 연금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2062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1명당 생산가능인구가 1.2명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고령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형식만 갖춘 껍데기 정책,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는 곤두박질 치고 있는 출산율 하락세를 멈출 수 없을 뿐더러 수십년 안에 위기상황에 직면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