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송 변호사에게 어느 날 몰골이 추레해진 단골 국밥집 주인 순애(김영애)가 찾아와 아들 진우(임시완)의 변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정 때문에 교도소를 찾아간 송 변호사는 혹독한 고문에 이성마저 잃은 진우의 상태를 보고 분개한다.
진우가 읽었다는 이적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밤새워 읽은 송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인 선배를 찾아가 진우가 연루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한다.
'변호인'은 1981년 군사정권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조작한 용공사건인 '부림사건'이 소재다. 고졸 출신 판사에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시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이 돈만 밝히던 변호사가 학습과 변호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 성장영화의 공식에 맞춰 포장했다. 학생운동을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지"라고 깎아내렸던 송 변호사는 고문받은 진우를 보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분개하며, 시국사건 변호를 맡으면서는 "내 자식들은 이런 세상에 살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까지 말할 정도로 성장한다.
이런 인생의 변곡점을 능숙하게 타 넘는 송강호의 연기가 훌륭하다. 세속적인 변호사를 보여주면선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극에 재미를 부여하고, 법정에 선 인권변호사로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파트너인 사무장 동호 역을 맡은 오달수를 비롯해 용공사건을 주도하는 차 경감 역의 곽도원, 판사 역을 맡은 송영창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영화는 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헤어스타일, 심지어 고문 방법까지도 사실적으로 고증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라면 국물을 이용한 물고문, 통닭을 굽는 모양으로 사람을 고문하는 이른바 '통닭구이' 등 엄혹한 시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인권유린의 실태가 스크린에 구현된다.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휘발성 강한 '노무현'이라는 소재를 "정의, 민주, 공화"라는 이상적인 대사들로 포장하며 살려냈다는 점이다. 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둬온 투자·배급사 NEW의 색깔도 드러난다.
그러나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송우석에 대한 다층적인 캐릭터 분석이 아쉽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영화의 아킬레스건이다. "민주와 정의" 같은 말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듯하여 단어가 주는 울림의 한계효용도 체감한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일어났던 밀도 높은 시대인 1980년대에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던 신예 양우석 감독이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12월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