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 불통외교…국익(國益)이 무너진다.

예비 불법조업국(IUU) 지정…외교부, 2년 넘는 기간 뭐했나?

국익과 직결된 대외 협상 과정에서 외교부와 실무 부처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아 기차와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철도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비준 처리는 정부가 국내 철도 시장을 너무 성급하게 개방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유럽연합이 우리나라를 예비 IUU(불법, 비보고, 비규제) 국가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외교적으로 제때 방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외교부가 개입돼 있다. 대외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외교부의 무능력이 도마 위에 오른 이유이다.

◈ 해수부 vs 외교부 칸막이...예비 IUU 지정 경고 무시

유럽연합은 지난 2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가나, 퀴라소 등 3개국을 예비 IUU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EU는 한국이 ‘어선위치 추적장치’를 의무화하지 않았고 ‘조업감시센터’도 가동하지 않았다며 예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최종 IUU 국가로 지정되면 수산물을 유럽에 수출할 수 없게 되고, 어선 거래도 금지돼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숨겨진 내막이 따로 있다. 국내 원양어선들이 유럽연합, 특히 스페인이 장악해 왔던 아프리카 수역에 진출하면서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결국 유럽연합은 국내 원양어선들이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한국정부도 이에 대해 감시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구실로 이번에 예비 IUU국가로 지정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EU 움직임에 대해 정부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외교적으로 방치해 왔다는 점이다.


EU가 우리나라 원양어선의 조업 활동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미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EU는 지난 2010년부터 국내 개별 원양어선에 대해 불법조업 여부를 한국 정부가 조사해 줄 것을 10여 차례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EU는 한국에 대해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기로 이미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해양수산부는 물론 외교부가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부 관계자는 “그동안 불법조업 문제와 관련해 EU측과 4차례에 걸쳐 협상을 벌였지만 예비 IUU국가로 지정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EU 움직임에 대해 외교부로부터 어떠한 정보도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EU에 파견된 외교부 직원 가운데 수산 분야 전문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양 어업자원과 관련된 국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어업 협상의 당사자인 해양수산부의 안이한 대응도 문제지만, 유럽 현지의 분위기와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외교부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이다.

◈ 국토부 vs 외교부 칸막이...국내 철도 부품시장 위기

최근 우리 정부는 철도와 건설시장 등을 개방하는 내용의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에 동의하는 비준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GPA 개정안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만과 캐나다, 노르웨이 등 5개국이 비준 절차를 완료했고 미국과 EU, 일본 등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 비준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GPA 개정안은 15개 회원국(유럽연합 28개국은 1개국) 가운데 2/3인 10개국이 비준 처리하면 곧바로 발효된다.

결국, 국내 철도와 건설시장이 내년 초에 전면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는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연간 8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정부조달 시장 개방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조달시장 진출 기회가 오히려 확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과 달리 국내 철도시장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철도 선진국에 비해 가격과 기술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고속철도 ‘산천’의 경우 주요 핵심 부품 20% 정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도시철도와 일반 철도의 경우도 부품 국산화율이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프랑스, 독일 등 철도 선진국과 비교해 국내 철도 기술력은 5년 이상 뒤쳐져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철도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에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돼 국내 철도시장이 개방되면 중소 부품업체들이 초반에 고전할 것으로 우려 된다”고 설명했다.

이 뿐만 아니라 국내 건설시장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교량 사업의 50% 이상은 프랑스와 독일이 개발한 공법을 사용하며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고, 도로 재포장 기술도 독일이 주도하고 있다.

외교부가 주도한 정부조달협정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너무 성급하게 도장을 찍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국토교통부의 간부 공무원은 “국내 철도 시장의 자체 부품조달 비율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외 협상의 어설픈 현 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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