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까? 음, 이번 주말에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없었으니 요트 위에서 먹을 샌드위치 거리를 장만해도 좋겠군. 아차, 그녀가 좋아하는 샤르도네도 한 병...'
금요일 오후 그가 차를 몰고 떠나는 곳은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월롱공.
일주일의 피로를 한방에 녹여줄 여행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시드니에 사는 대부분 도시인들이 꿈꾸는 이상형이다.
여행의 목적이 반드시 유명 명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만큼 여행자의 반경은 넓어지게 된다.
빡빡한 패키지여행의 '찍고 턴' 루트에서 조금 벗어난 월롱공과 쉘하버, 키아마 역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알 만한 지역이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시드니에서 불과 2시간이 채 못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행이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면 '만사 OK'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우리나라의 울릉도와 무슨 연관이 있는 도시인가 할 정도로 그 이름조차 생소하고 낯선 월롱공은 시드니 남부 월롱공(Wollongong)과 쉘하버(Shellharbour), 키아마(Kiama)를 아우르는 일라와라 지역의 대표 도시이다.
30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라마틱한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17개의 해변 마을들.
처음 호주로 이민 온 여러 다양한 민족들이 시드니의 비싼 물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마을을 이룬 것이 지금의 도시를 형성하게 됐다고는 하지만, 그런 표면상의 이유 못지않게 아름다운 해안 풍경은 낯선 이방인들의 마음까지 포근히 감싸안아줄 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웠을 것이 분명하다.
◈ 무공해 자연빛을 그대로 간직한 월롱공의 해안 = 번잡한 도시의 빛깔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월롱공의 대표 컬러는 짐작하다시피, 블루와 그린이다.
특히나 하늘이 새파랗게 높은 날, 높은 산이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뜬금없이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다.
이런 절경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월롱공에는 전망대도 참 많다. 전망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최초의 행글라이딩 포인트였다는 스탠웰 공원 북쪽의 볼드(Bald)힐.
그는 1894년 4개의 상자꼴 종이연을 만들어 오스트레일리아 최초로 지상 5미터 상공을 바람의 힘으로 날았다. 그리고 이 최초의 비행을 시작으로 엔진비행기와 움직이는 날개를 단 비행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엄격히 말하면 그가 행글라이더를 만들어 하늘을 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감이 오늘날의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딩을 탄생시켰다고 하면 그럭저럭 이해가 간다.
하지만 행글라이딩의 메카로 알려진 볼드힐에서도 사시사철 행글라이딩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쉽게도 바람이 잘 불지 않거나 기상이 좋지 않은 겨울철에는 멋진 행글라이딩을 기대할 수가 없다.
전문 행글라이더가 아니더라도 바람이 좋고 적당한 날에는 노련한 숙련가와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초보자의 도전도 언제나 환영이다.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가장 깨끗한 비치라는 어스틴머르(Austinmer) 비치의 풍경은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여졌던 해변에 파도타기를 즐기려는 서퍼들로 시끌벅적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서핑을 배우려는 무리들의 수다와 서핑을 가르쳐주는 서핑센터의 요란한 음악소리도 거기에 한 몫 한다.
물론 서퍼가 아니라도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해변 건너편의 씨푸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해산물을 주문할 수도 있고 쪽쪽 빨아먹으면 더 맛있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에 푹 빠져볼 수도 있으므로.
또 서퍼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비치 한켠에 바닷물을 담아 만든 해수풀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럼, 이보다 좀더 조용한 비치는 없을까?
왜 없어! 노스 월롱공(North wollongong)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한적하게 두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노부부, 조용한 풀밭 위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연인, 또 해변 뒤편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어 굳이 물속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조용히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공원에 설치된 간이화장실은 육중한 철문으로 만들어진 반자동 형식인데, 사용법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내부에서는 초록버튼을 이용해 문을 열고 벽걸이 화장지도 버튼을 눌러야 사용할 수 있다.
또 물을 내리는 버튼이 별도로 없으므로 일단 손을 씻을 것. 그러면 세면대의 센서가 변기에 물을 흘려보낸다. 혹 내부에서 초록버튼이 눌러지지 않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15분이 지나면 철문이 열리므로 차분히 기다리는 게 좋다.
기왕 노스 월롱공까지 걸음을 내둘렀다면 근처에 멋스럽게 서있는 등대에도 올라보자.
월롱공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등대는 1910년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지금은 완전히 폐쇄됐다. 대신 언덕 아래로 굽어보면 더 크고 세련된 등대가 항구 주변에 정박된 새하얀 요트와 더불어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월롱공의 밤바다를 지켜주고 있다.
◈ 월롱공 남북부의 대표 볼거리, 남천사와 심비오 동물원 = 시드니와 월롱공의 경계선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심비오 야생동물원은 월롱공의 지역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곳이다.
자그마한 레스토랑처럼 보이는 기념품점을 통해 입장하게 되는 이곳은 동물원이라기보다 흡사 삼림욕장 같다. 울창한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야생의 숲 가운데 드문드문 울타리를 쳐놓은 모양이랄까. 게다가 대지가 넓은 탓인지 동물원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찜찜한 냄새도 없다.
사람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동물들 대부분이 이 넓은 땅을 자기집처럼 활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양이나 캥거루, 타조 사촌격의 에뮤에게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
하지만 때로는 사람에게 너무나 격 없이 다가오는 동물들이 도리어 무섭기도 하다. 또 하나, 심비오 동물원의 특징은 동물들을 상대로 체험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놓았다는 것.
코알라 우리 안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귀찮아죽겠는 코알라를 가슴에 폭 안아볼 수도 있고 캥거루를 유인할 수 있는 먹이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호주 토종새인 코카투앵무새와의 인사, 커다란 악어의 아슬아슬한 묘기, 새끼 악어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주 특별한 경험도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노스 월롱공에서 놓치면 아쉬운 여행지가 심비오 동물원이라면 사우스 월롱공에서는 남천사(Nan tien temple)가 그런 곳이다.
특히나 기독교 인구가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호주에서의 불교사찰은 그 자체가 호기심의 대상이며 또 호주, 아니 남반구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 하니 가히 구미가 당기는 게 사실이다.
'남쪽의 천국'이라는 뜻의 남천사는 1995년 중국승려 포구엉샨(Fo Guang Shan)에 의해 세워진 국제적인 사찰로, 동서남북간의 문화교류를 촉진시키고 특히 남반구 불교 포교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중국 스타일의 주황색 지붕이 역시나 동양적 이미지를 살려주는 남천사의 홀 중에서 가장 먼저 발을 딛게 되는 곳은 중앙 법당이다.
다섯 가지 컬러와 제각각 다른 손모양을 보여주고 있는 다섯 개의 불상. '믿음, 생명, 지혜, 내면의 아름다움, 고요한 영광'을 나타내는 손짓과 컬러의 의미가 다시금 불상을 찬찬히 뜯어보게 만든다.
또한 다섯 개의 불상을 둘러싼 벽에는 벽지의 모양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1만 개의 작은 불상이 작은 칸 속에 빼곡히 들어앉아있다. 1만 개라는 숫자는 결국 나를 둘러싼 모든 곳에 부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남반구에서 가장 큰 사찰답게 중앙 홀 말고도 내부에는 자비홀과 명상홀, 강당, 회의실, 100개 룸이 있는 롯지, 심지어 작은 박물관까지 갖춰져 있으며 건물은 조용한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가만가만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또한 매일 오후 4시 30분이면 높다란 사다리 의자를 놓고 올라가 북과 종을 치는 의식도 이곳의 볼거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