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영업 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금융업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은행들로선 매우 피곤한 숙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계좌 이동제는 거래은행을 바꿔도 공과금 이체 등이 새 계좌로 자동 이전되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은행 금리나 서비스를 비교해가며 쉽게 갈아탈 수 있어 반길 일이지만 은행들에겐 여간 불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상시적으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고객 돈으로 쉽게 장사하던 호시절은 지난 셈이다.
국내 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은 70조원 규모로 계좌 수는 최소 3천만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거의 제로금리에 가까운 저원가성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해 높은 이율로 대출해줌으로써 손쉽게 예대차익을 챙겨왔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신금리를 놓고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예대차익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알토란같은 수익원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내심 불만이 가득한 채 은행 입장을 더 반영한 수정안을 요구하려 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 이병찬 수신제도부장은 “원론적으로는 찬성이지만 보완할 점도 있다”며 “(공과금 이체 등을 다른 은행으로 자동 이전하는 문제와 관련해 은행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완전 자동은 반대”라고 말했다.
소비자도 어느 정도는 발품을 팔게 함으로써 너무 빈번한 계좌 이동은 막으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간단치 않고 은행간 과열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오히려 새로운 규제를 추가한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금융비전은 금융권 목소리를 반영해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는 한편 업계가 난색을 표하는 계좌 이동제 등을 끼워넣었다.
소비자 선택권 강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에 앞서 금융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무한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절박한 필요에 의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당연히 피곤하겠지만 반대할 명분이 없다”면서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별 은행간의 이해관계도 갈릴 것”이라며 “선발주자는 싫겠지만 후발주자들에겐 기회가 된다는 측면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