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대가 점거한 태국 재무부 청사

27일 오후 1시께 반(反) 정부 시위대가 점거한 태국 재무부 청사.

방콕 중심부 파야타이 지역에 위치한 재무부 구내 마당에는 잉락 친나왓 총리 정부에 반대하는 방콕 시민과 반 탁신 진영 시위대 수백명이 모여 있었다.

마당 앞쪽에 차려진 연단에는 연사가 마이크를 잡고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체제를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마당 곳곳에 차려진 확성기를 통해서는 연이어 탁신 전 총리를 비난하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시위대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대부분 마당 구석 그늘진 곳이나 나무 아래서 연사의 연설을 듣거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재무부 청사를 점거한 지 3일째여서, 피곤에 지친 듯 돗자리를 깔고 잠을 자는 이들도 많았다.

마당 곳곳에는 시위대에 공급하기 위한 수백개의 물병들이 쌓여 있었으며,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배식소가 여러 군데 차려져 있었다.

재무부 청사는 반정부 시위 지도자인 수텝 타웅수반 전 부총리의 주도 아래 지난 25일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같은 날 점거된 일부 다른 청사에서는 시위대가 철수했으나 재무부 청사에는 점거가 계속되고 있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 출신으로, 최근 의원직을 사퇴한 수텝 전 부총리는 재무부 청사를 시위대의 본부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날 청사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마놉 씨루앙(40. 대학교수)씨는 "탁신은 부패하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며 "해외로 도피해 두바이에 살고 있으면서도 태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시위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잉락 총리가 물러나 태국을 떠나길 바란다"며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점거 첫날 재무부 예산국 1층을 점거했으나 이날은 마당에 모여 있었을 뿐 건물 내부를 출입하지는 않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문이 자물쇠로 채워져 폐쇄돼 있었다.

시위대는 연령대와 직업이 다양해 보였다. 20~30대 젊은이들과 40~60대의 중장년층이 섞여 있었으며, 남성 못지않게 여성 시위자들도 많았다.

모스트 프라못(30. 회사원)씨는 "탁신 전 총리가 부패했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 왕에게도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탁신 전 총리와 그의 여동생인 잉락 총리 정부를 반대하는 이번 시위는 지난 24일 정점을 이룬 뒤 25~26일 재무, 외무부 등 주요 정부 청사 불법 점거와 포위로 이어졌다.

26일과 27일에는 의회에서 잉락 총리에 대해 민주당이 제출한 불신임안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서 시위가 다소 약화된 양상을 보였다.

시위대가 청사를 불법 점거하자 법질서 붕괴를 우려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동안 시위에 평화적으로 참여했던 방콕 중산층들이 적지 않게 시위대를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잉락 총리는 치안 유지를 이유로 방콕 시내 전역과 공항 등 인근 중요 지역에 국내보안법(ISA)을 선포했다.

잉락 총리는 그러나 시위대의 집회, 행진, 점거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있다.


시위 주도자인 수텝 전 부총리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경찰은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시위대 앞에서는 그를 체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회는 잉락 총리 불신임안을 오는 28일 표결에 부친 뒤 29일 휴회에 들어간다.

민주당 대표인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가 불신임안 토론에 참여하자, 야권이 '거리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화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집권 푸어 타이당이 추진했던 사면법안과 헌법개정안을 무산시킴으로써 이번 시위를 일정 수준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시위대의 정부 청사 점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그동안 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방콕 시민들이 이탈하기 시작하자 더이상 시위를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야권과 반 탁신 진영이 잉락 총리가 퇴진할 때까지 시위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수텝 전 부총리는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조기 총선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선거를 치르지 않고 국민회의를 만들어, 이를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친 탁신 진영이 반발할 것은 뻔해 태국은 친 탁신 진영과 반 탁신 진영이 끊임없이 권력 다툼을 계속하는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시위 사태는 부정부패로 유죄선고를 받고 해외도피한 탁신 전 총리의 사면과 귀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포괄적 사면법안이 기폭제가 됐다.

재무부 청사에서 가까운 아리 전철 역에서는 이날 정오께 200~300여명이 반 탁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태국 국기를 흔들고, 잉락 정부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호루라기를 불었다.

시위에 참여한 와이폰(46)씨는 "부패한 탁신 전 총리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귀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민주주의 원칙을 깨뜨리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며 수텝 전 부총리의 선거 거부 발언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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