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인화’를 아십니까…비정규직 방패삼는 정규직

[격차사회, 노동조합에 주목하라 ③] 거꾸로 가는 대기업 노조

CBS노컷뉴스는 앞서 고용이 마치 신분으로 고착화 되는, 이른바 ‘고용카스트 현상’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격차가 벌어지고, 이제는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공고화되는 이른바 ‘격차사회’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과연 노동조합은 격차사회를 시정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4차례에 걸쳐 격차사회 속 노동조합의 현주소와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정규직의 방패막이 됐던 '비정규직'

“GM 안에 생인화(省人化)가 있었어요. 가장 먼저 타격받은 곳이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죠.” 사람을 덜어낸다는 뜻의 ‘생인화(省人化)’. 지난 2009년 회사의 생인화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은 대규모 희망퇴직과 함께 정규직에 대한 배신감을 맛봐야 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을 지켜주기 보다는 비정규직이 빠진 자리에 투입되는 쪽을 택했다. GM대우의 1차 협력업체 직원인 김모(45)씨는 이를 두고 ‘배신행위’라고 표현했다.

“정규직 노조도 불안하니까. 희망퇴직으로 비정규직 자르고 남는 정규직을 투입하는 거죠. 이걸 노조가 합의를 해줬어요. 비정규직이 방패막이가 된거죠.”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은 비단 GM대우만의 일이 아니다. 협력업체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00년 6월 회사와 정규직간 완전고용 보장 합의를 체결했다. 정규직 노조가 회사의 비정규직 고용을 인정하되 공장 전체 비정규직 투입비율을 16.9%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위해 회사 내 비정규직의 존재를 용인한 셈이다.

정규직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로 한 이른바 ‘고용세습’ 조항은 대기업 노조 ‘밥그릇 챙기기’의 극치로 손꼽힌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비단 현대차 뿐 아니라 상당수 공공기관에도 단협과 인사규정에 고용세습 조항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 파업에 반발해 불매운동까지.. 부정적 인식 자초

지난 8월, 현대차 노조의 파업에 여론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일부 네티즌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대차 불매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역풍이 불었다. 거꾸로 가는 대기업 노조의 행태가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인 김 모(32)씨는 “노조가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현대차 파업을 보면, 돈을 적게 받는 것도 아닌데 자기들 이익만 추구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재직중인 회사원 박 모(35)씨도 “앞 뒤가 안 맞는 모습이다. 제일 힘든 건 하청업체인데 하청업체는 돌보지 않고 자기들 이권 다 챙기는 귀족노조라고 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대기업 노조, 여론을 돌아보라"

노동 전문가들은 먼저 대량해고의 아픈 기억으로 “회사 다니고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현대차 노조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임금만 챙기는 현실과 사회에 끼치는 무게감과 비교할 때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성균관대 HRD 연구센터의 진숙경 선임연구원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어찌 보면 노조의 본래 속성이지만, 현대차 노조가 한국사회의 노조로 대변되는 현실을 비쳐볼 때 자신들의 요구에 대해 여론을 돌아봐야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는 80년~90년대만 해도 한국 노동사회의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대차 노조 등 대기업 노조의 협상 결과물이 중소기업들에 영향을 미쳤지만 현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대기업의 결과물이 중소기업에는 다른 세상 얘기가 됐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예전에는 현대차 노조가 우리 노조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현대차 노조는 예외적인 노조가 됐다"고 꼬집었다.

조 연구위원은 이어 "대기업 노조는 초심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선도투쟁으로 무엇을 획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중소기업과 연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만 주장하기 보다는 협력업체 등이 혜택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대기업 노조는 '해당 기업의 노동자 대표'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연대기금 등을 통해 비정규직과 나눔을 시도하고 사측의 단가후려치기 등의 행태도 감시하는 등 우리 사회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나서야한다는 얘기다.

(내일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 존경받는 노조로 가는 길'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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