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탕평 두 글자는 바로 저잣거리의 노랫가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 모는 아이나 말 끄는 군졸이라도, 말이 조금이라도 애매해 이쪽도 옳다하고 저쪽도 옳다하면 곧장 탕평이라고 지목해 한바탕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탕평옷도 있고, 탕평띠도 있으며, 탕평부채까지 있으니 어리석은 백성의 소견이 정곡을 꿰뚫는다 했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차마 이 삼백년 종묘사직을 웃음거리로 만드신단 말입니까? 전하께서 단연코 탕평 두 글자를 국시로 삼아 아무도 논의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신이 보기에는 뻔뻔한 한두 사람 만 빼고는 온 나라의 선비와 관리들은 아무도 옳다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선비와 관리뿐 아니라 저 미천한 소몰이 아이와 말 끄는 군졸까지도 옳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저 뻔뻔한 한두 사람의 식견이 어떻게 능히 한 나라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 글은 영조의 탕평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기 위해 서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작성 시기는 대략 영조 12년(1736년)쯤으로 보인다. 이 글을 지은 임성주는 김원행, 송명흠, 송문흠 등과 교류한 학자로서 이들 모두는 송시열의 계보를 잇는 이재의 제자였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탕평띠니 탕평관이니 하는 것은 탕평을 조롱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것이 탕평이며, 그래서 조금만 애매모호하면 모조리 탕평을 가져다 붙인다는 것이다. 조금 격하게 말한다면 비빔밥이요 잡탕이라는 뜻일 게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탕평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애들까지 조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시대 왕의 국시를 신하들이 비판할 수 있겠지만, 저잣거리 애들까지 조롱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극도로 격화된 당쟁 때문에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 없애자고 내놓은 탕평을, 저토록 온 백성이 조롱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전통시대 정치는 시(是)와 비(非), 정(正)과 사(邪), 충(忠)과 역(逆)을 가르는 행위 자체다. 정치가 시비를 가르는 행위이다 보니 양립할 수 없는 분파의 형성은 필연적이며, 절충이나 타협은 끼어들 여지가 없이, 오직 판단을 통해서만 해소되니, 모든 것이 왕에게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비를 갈라야 하는 왕이 탕평이라는 절충과 타협을 말하자 모두들 비난과 조롱을 쏟아내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격화된 당쟁을 겪으면서 모든 이가 시비나 충역의 한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가진 우리가, 타협과 절충을 옳게 여기지 않고 끝없는 시비에 골몰하는 모습이 일견 이해도 된다.
서정문(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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