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한 여권이 연일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정치권과 종교계간 정교(政敎)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대통령 하야·연평도 포격' 들끓는 여권
지난 22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가 열었던 시국미사로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두 가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먼저 사제단은 지난 대선을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로 규정하면서 진상규명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또 하나는 박창신 신부가 한 시국미사 강론이다. 박 신부는 “NLL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라며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즉각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고 새누리당은 “비겁하게 사제복 뒤에 숨어서 반국가적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맹렬히 공격했다.
또 ‘정의구현사제단이 아닌 종북구현사제단’이라며 아예 ‘종북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24일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이제 사제복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종북성향을 분명히 국민들 앞에 드러내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국방위원장과 군 장성출신 의원 등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연평도 희생자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사제단의 석고대죄와 함께 천주교계의 종북신부 척결 자정운동을 요구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들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정의구현사제단 해산 촉구 집회를 열었고
한 60대 남성은 명동성당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허위전화를 걸기도 했다.
◈ 정의구현사제단은
논란의 중심에 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4년 9월 결성된 이후 한국 민주화 역사의 중심에 서왔다.
유신헌법 반대운동과 긴급조치 무효화운동 등으로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맞섰고 1987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해 전두환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는 6월 민주항쟁에 불을 지폈다.
이후에도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폭로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요구 시국미사 등으로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지 않은 비공식단체로 천주교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는 2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 강론에서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리서 등을 근거로 '이는 평신도의 소명이지 사제가 직접 정치·사회 문제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염 대주교는 "사제의 교만과 독선은 더 문제가 된다며 정치 개입은 교회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숙고하라"고 자제를 당부했다.
◈ 개신교계로 옮겨붙는 대통령 사퇴 요구
개신교 목회자들의 모임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이하 목정평)는 다음달 16일부터 성탄절까지 열흘 동안 서울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금식기도회를 열 계획이다.
목평정 상임의장인 정태효 목사는 지난 23일 CBS라디오 '주말 시사자키 윤지나입니다'(표준FM 98.1MHz)에 출연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기반에 올라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래서 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싸우며 이뤄왔던 민주적 토대들이 무너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소속 목회자들 모두 강하게 품고 있다"고 밝혔다.
또 평신도 단체인 '정의평화기독인연대'도 다음달 첫째주 시국기도회를 주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목평정 등 개신교 목회자와 평신도 모임들은 25일 긴급회의를 열고 공동 행동을 모색할 예정이다.
◈ 정교갈등 비화하나…연말정국 시계 제로
따라서 자칫 사태가 정치권과 종교계가 정면충돌하는 정교 갈등까지 우려되고 있다. 가뜩이나 극한 대치 중인 정치권에 미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
역대 정권 반대 운동에서 종교계의 참여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는 '일부, 극소수 사제의 일탈행위'라며 전체 종교계와 분리시키며 사태 확산 차단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또, 민주당과 신야권연대을 향해서도 '사제들의 입을 빌린 대선불복’을 경고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연평도 포격과 NLL 인식은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대통령과 여당이 자초한 일"이라며 국가기관 대선개입 특검 수용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특검 무용론’은 그대로인데다 당장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상되는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직권상정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를 놓고 여야 충돌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주부터 새해 예산안 심의와 각 상임위별 법안심사가 시작되지만 특검에다 종교계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연말정국은 '시계 제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