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고대 자바 문화가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이곳 족자카르타에서 거대 힌두사원인 프람바난 사원과 세계 불교 3대 유적지라 불리는 보로부드르 사원을 놓친다면 방문의 의미조차 무색하다.
번영의 도시를 지키고 있는 이들 건축물들과 마주하면 9세기경 프람바난 사원을 쌓아올린 사람들의 숨결과 보로부드르 사원 벽에 갇힌 2500년 전 붓다의 생애가 고스란히 돌담을 쓸고 있는 손바닥 안에 와 닿는다.
9세기에 세워진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세계의 보물 프람바난 사원은 안타깝게도 지난 2006년 5월 발생한 강진으로 사원 곳곳에 아픔의 흔적을 토해놓았다.
지지대가 떠받들고 있는 구조물이나 사원 곳곳에 허물어져있는 벽돌들은 재건된 사원과 함께 어수선하게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대지 끝에 펼쳐져 있는 프람바난의 자태는 하늘 위로 다소곳이 솟은 모양으로 여성스러움을 더한다.
47m 높이로 가운데 우뚝 선 시바 신전, 이를 보좌하듯 좌우에 안정감 있게 배치돼 있는 브라흐마 신전과 비슈누 신전은 신비롭게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외양을 하고 있다.
이 신전들과 서로 마주 보는 모양으로 세 가지 바하나당이 줄지어 서 있는데 여기에는 각각 시바 신의 암소, 브라흐마 신의 백마, 비슈누 신의 독수리 등 신들의 탈 것이 모셔져 있다.
종교적인 엄숙함 보다 신에 대한 인간의 로망을 형상화해 놓은 듯한 프람바난은 언제라도 제 모습이 신으로 변해 가둬놓은 암소와 백마, 독수리를 이끌고 하늘 위로 오를듯한 기세다.
기단에는 고대 신화를 형상화한 신전 외벽과 부조물에 새겨진 사자, 원숭이, 사슴 등의 동물들이 신전을 지키고 있어 긴 세월 속에도 인간의 기원이 안전하게 봉인돼 있는 듯하다.
◈ 켜켜이 쌓아올린 붓다의 삶 = 보로부드르(Borobudur)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파간과 함께 3대 불교유적으로 꼽히며 단일 불교건축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규모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이토록 커다란 축조물이 무려 1000년 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가 1814년 이 곳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인 리플스(T.S. Raffles)에 의해 발견됐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불가사의라 할 만 하다.
90%의 인구가 이슬람을 믿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렇듯 거대하고도 웅장한 불교 사원이 축조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인도양을 훌쩍 건너 전파된 불교문화가 얼마나 인도네시아에서 토착화되고 융성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마치 커다란 돌산이 언덕 위에 떨어져 앉은 것과 같은 기이한 형상의 거대한 보로부드르 사원은 '언덕위의 승방'이라 불리며 지금도 인도네시아 인들에게 자부심이 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사원이라는 개념보다는 자바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불교 대탑의 예술미를 보여주는 이곳은 만다라 형태로 위로 갈수록 급격히 작아져 멀리서 보면 빽빽한 첨탑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1층에서 2층까지는 욕망의 세계, 더러운 세상을 뜻하며 3층에서 4층까지는 속세를, 5층에서 10층까지는 극락세계, 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불상은 504개에 이르고 기단 벽면에 붓다의 생애와 행적을 새겨놓은 부조만도 1500여개에 달한다.
보로부드르는 과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구조물인지 그 규모에 한번 놀라고 가까이에서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정성어린 세밀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 이 사원은 100여년의 복원기간을 거치고 있으며 현재도 끊임없는 복원작업이 행해지고 있다. 관련 자료가 없어 후세의 추측으로 부조들이 모자이크 맞추듯 짜 맞춰져 있으며 이 때문에 일부 부조들은 그 이음이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돋아있는 새김들은 모두가 각자의 표정을 지니고 있어 빛바랜 돌 표면에서도 온기가 서려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각 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가파르고 층에서 계단까지의 이음새도 아슬아슬하게 돼 있어 부조에 눈을 옮겨 걷다보면 발을 헛디뎌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슬람 세력의 영향으로 불상들은 대부분 목이 떨어져 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산함을 느끼게 하지만 이러한 기분도 잠시, 최상층부로 올라서면 종모양의 스투파(Stupa)들이 공간을 장악하고 있어 끊임없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스투파 속에는 부처가 좌상하고 있어 구멍을 통해 이들의 손이나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실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은 어깨를 뻗어 있는 힘껏 부처상에 자신의 손을 닿으려 하지만 거리가 애매해서 만만치가 않다.
정상부에 오르면 극락세계가 펼쳐진다. 한 눈에 굽어보이는 인간세상과 병풍처럼 둘러싼 메라피 화산이 눈을 황홀하게 하고, 150계단을 오른 수고를 한 번에 식혀줄 바람이 극락세계에 휘몰아친다.
불교의 교리와 우주관이 높다란 사원 하나를 오른다고 간단히 전해질 리 없지만 작게 보이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고뇌는 순간이나마 깃털처럼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