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1957년 작성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발표한 강제징용자 피해자 103만 명의 7.7배에 달하는 규모다. 집계에 누락된 종군위안부까지 합치면 800만 명에 육박하는 조선인이 일제의 '추악한 전쟁'에 끌려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특히 이 명부에는 강제징용 뿐 아니라 3·1운동, 관동대학살 피해자 25만여명의 생년월일과 본적지 주소, 동원 상태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일본으로서도 부인할 수 없는 일제 과거사의 명확한 증거자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5월부터 조선에서 이 법을 시행했다. 또 1942년엔 근로보국대를 창설해 조선인 강제 동원의 초석을 다졌고,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에는 국민징용령을 조선인에게도 확대 적용해 강제징용을 실시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임금도 못 받고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쟁 중 또는 전후 전범으로 희생됐고, 사할린의 징용 조선인들은 귀국길마저 막혀 먼 이역에서 신산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당시 일본제국 정부에서 그런 일을 지시했다는 문서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사실 자체를 부인해 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외교부는 이번 사안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일본 정부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인지를 놓고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안이 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와 일본 정부에 책임문제를 제기할 성격인지 등을 재차 따져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의 이 같은 태도는 무책임을 지나쳐 매국에 가까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기 위해 굴욕적으로 맺었던 협정에 발목이 잡혀 새로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들의 보상을 일본 측에 요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부도 아니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 안에 일본에 증거를 제시하면서 적절한 보상책을 요구해야 한다.
윤재석 CBS객원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