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박근혜 대통령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기획보도-위기의 포스코④] 5년마다 되풀이되는 'CEO 교체 잔혹사'

포항의 포스코 본사 철강산업단지 (김민수 기자)
포스코는 역사적인 기업이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으로 설립돼 한국 근대화의 초석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한 때 25%25를 넘는 영업이익률로 외국에서도 탐을 내는 알토란같은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최근 몇 년간 침체를 거듭하며 그 위용을 잃고 있다. 경영 실적이 갈수록 하락하는데다, 정준양 회장의 사의 표명에서 확인된 것처럼 민간기업임에도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수장도 함께 바뀌는 ‘CEO 리스크’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향후 5년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CBS 노컷뉴스는 포스코의 침체와 그 원인, 향후 방향을 진단하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1968년 4월 1일. 마침내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세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회사의 성격을 ‘특별법에 의한 국영기업체’로 하자고 했으나, 관료주의와 정부 간섭의 폐해를 우려한 박태준 사장은 민간 기업을 주장했다. 청와대에서의 세 차례 토론 결과, “임자한테 졌어. 좋은 방법을 강구해봐!”라는 말로 회사의 성격이 정해졌다.

#하와이 구상


1969년 2월. 철석같이 믿었던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의 제철소 건립 자금 지원이 무산됐다. 귀국길 하와이에 들린 박태준 사장. 낙심천만의 심정으로 하와이 모래사장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섬광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바로 그거야! 일본! 청구권 자금 3억 달러 중 적어도 1억 달러가 남아있단 말이야.”

#종이 마패

1970년 2월3일. 포철의 설비 구매 과정에서 공급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려는 정치인의 간섭과 압력이 극심한 상황. 포철 공사 현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박태준 사장은 박대통령에게 작심하고 “구매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직언을 한다. 이에 박대통령은 박태준 사장의 건의를 적게 한 뒤 문서 왼쪽 상단에 “박 사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소신껏 처리하라”는 친필 서명을 한다. 이 문서는 이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에게 ‘종이 마패’ 역할을 했다.

이상은 설립 과정에서부터 배태된 포스코의 역사적 정체성, 기업 문화적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거론되는 사례들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포항제철 고로에 점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제공)
‘하와이 구상’이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정신대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민초들의 피맺힌 돈으로 포철이 설립됐음을 의미한다면, ‘종이 마패’와 회사의 성격이 상법상 주식회사로 정해지는 과정은 포철이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탄탄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단초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단초들은 이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심화 발전되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포스코는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정부 압박으로 포스코의 회장도 함께 바뀌는 구조 속에 글로벌 철강 회사로의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내부인사가 권력 핵심의 낙점을 받아 회장으로 선출된 뒤 권력의 영향권 아래 경영을 하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민족의 핏값'으로 설립된 포스코가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5년마다 되풀이되는 ‘CEO 교체 잔혹사’의 고리가 이번에는 끊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정치인 출신의 낙하산을 막고, 포스코 내부인사가 권력과 결탁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행태를 차단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도덕성, 철강 전문성, 미래 비전, 글로벌 감각 등 몇 가지 가이드라인만 제시한 가운데, CEO 추천위가 누구라도 동의할 투명할 절차를 고안해 회장을 뽑아야 악순환의 고리가 끊길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상조 소장은 “누구라도 동의할 투명한 절차”와 관련해 “현재 사외이사들로 구성되는 CEO 추천위 선임 절차는 5년 뒤 정부 출범 후 정부의 압박을 막아낼 정도가 못 된다”며 “보다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안을 마련해,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후보를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강력하게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력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인물이 강화된 절차적 정당성을 통과해 적어도 임기 내 좋은 경영 성과를 낸다면 정권 교체와 별개로 갈 가능성의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은 “포스코라는 국민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CEO 교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야말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포스코의 새 회장이 선출돼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도 유력 정치인들의 포스코 이권 개입 등 외풍을 막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포철의 설립 때부터 박태준 사장에게 이른바 ‘종이 마패’를 써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유력 정치인들의 이권 개입 등 외풍을 막아 줌으로써 오늘의 포스코가 있을 수 있었다”며 “새로운 형태의 바람막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철강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 외부적 환경도 엄혹한데, 최고 경영자의 임기 보장 등 민간기업의 기본이 무시되면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회사로 성장하기 어렵다.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역발상만이 5년 뒤 회장 교체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고, 포스코가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다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김상조 소장은 “5년 전 정준양 회장의 선출 당시 무수한 말이 나왔고 결국 이명박 정부의 부담이 됐다”며 “박근혜 정부도 똑같은 과오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권의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얘기이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됐다는 역사적 정체성을 생각할 때 포스코가 경쟁력을 잃고 좌초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을 만들어 한국 근대화의 디딤돌을 놓은 것처럼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성장을 통해 국민경제에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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