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국의 횡포에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대형 기획사의 등장으로 기획사들의 입김이 세졌다고 하지만 중소형 매니지먼트사들에게는 여전히 방송국이 갑일 뿐이다.
한 가수는 최근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제안을 받았다. "촬영 날짜를 빼달라"는 제작진의 요청에 스케줄을 조율했던 이 가수는 촬영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럽게 출연 불발 통보를 받았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강력한 항의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방송가의 중론이다. 해당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신인가수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대다수 가수 매니지먼트사들은 신인가수들을 지상파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공을 들여도 불발되는 일이 다반사"라며 "신인 출연을 위해서라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라도 방송국 요구에 따라야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신인그룹 A를 데뷔시킨 한 기획사 이사는 "A를 지상파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홍보비로 1억2000만원이 지출됐다"며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말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돈을 쓰고도 여전히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 서지 못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오디션 출신 스타들의 견제도 여전하다. 최근 몇 년간 오디션 열풍으로 방송3사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타 방송사 오디션 출신 가수가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신인 아이돌그룹의 매니저는 "멤버 중 한 명이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 스케줄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며 "어떻게 뚫어야 할지 고민이다"고 고백했다.
컴백 무대를 먼저 잡기 위한 각 방송사의 신경전에 가수들과 소속사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자사 케이블 방송 무대를 통해 첫 컴백 무대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공중파 방송 음악 방송 출연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4% 안팎이다. 수치는 높지 않지만, 출연 즉시 검색어에 오르는 등 홍보 효과가 높은데다 가수의 자존심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
갑의 횡포는 이뿐이 아니다.
몇몇 개그 프로그램들은 출연 개그맨들의 스케줄을 직접 관리한다. 만약 코너가 인기를 얻을 경우 다른 버라이어티프로그램 출연이나 인터뷰 제의가 빗발치지만, 제작진의 허락없인 출연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라디오에 출연하는 것까지 제작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제작진이 개그맨들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명목은 이미지 소모다. 코너에서 선보인 캐릭터가 타 방송을 통해 지나치게 소모되면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개그프로그램의 특성상 개그맨의 유명세는 코너와 궤를 같이 한다. 개그맨으로서 생명력과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버라이어티 출연이나 언론 노출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프로그램을 위해 개그맨들에게 출연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도 개그맨이나 소속사는 불만을 표현할 수 없다. 코너를 무대에 올릴지 여부가 제작진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코너 검사를 받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여기에 있다.
개그맨의 출연을 추진하다 거절당한 한 방송관계자는 "소속사가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진이 스케줄을 관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이것이야 말로 갑의 횡포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