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2011년 초 참여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만복 씨를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 및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국정원은 김 전 원장이 2010년 10월∼2011년 1월 35인이 공저한 저서 '다시 한반도의 길을 묻다'와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 2월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강, 주간지 인터뷰 등을 통해 국정원장 재직 시 알게 된 기밀을 누설했다고 문제를 삼았다.
김 전 원장의 기고와 강연에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서해평화지대 구상을 밝히고 설득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와 상의해 흔쾌히 수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은 김 전 원장의 행위가 기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으나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정원장으로서의 경험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공개 사항이 누설된 것일 뿐 작심하고 누설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혐의는 인정하되 재판에 넘기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게 참여정부 인사에 대해 강경했던 국정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대화록이 유출된 의혹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밀유출을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김 전 원장과 달리 새누리당의 정문헌, 서상기, 김무성 의원은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기획적으로 대화록을 유출해 범죄 혐의가 더 짙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단순한 강연·기고보다 목적을 가지고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죄질이 훨씬 나쁘다"며 "당연히 더 강한 처벌을 받는 게 맞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고발한 대화록 유출 사건과 관련해 정문헌 의원은 2009년 청와대 통일비서관 시절 대화록을 봤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취지로 말해 NLL논란을 촉발시켰다.
지난해 대선 유세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 발언을 했다'며 인용한 김무성 의원의 발언은 회의록 원본과 조사, 순서 등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일치하며 원문의 8개 항목, 744자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김 의원이 읽은 문건은 "NLL 문제는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다", "나는 지난 5년 내내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 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 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다"는 등 대화록 원문과 '토씨'까지도 같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검찰 조사 이후 취재진들에게 "하루에 수십건 정도 보고서와 정보지가 난무했는데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형태로 대화록 문건이 들어왔다"며 이상한 해명을 내놓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앞서 서면조사를 받은 권영세 주중대사도 지난해 12월 "소스가 청와대 아니면 국정원이니까.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고 말한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의원도 국정원을 통해 대화록을 봤다며 'NLL포기 발언'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지난 대선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사고 있는 국정원이 대화록 유출에 대해서도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일관성 없게 대응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권 대사 등의 말처럼 국정원 스스로가 유출한 정황이 나오면서 고발을 못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