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가워졌다. 텔레비전 뉴스로는 스키장 개장 소식이 등장하지만 그 그늘 아래 쓸쓸하고 안타까운 소식도 이어진다. 고독사 소식이다.
고독사하면 흔히 노인 고독사를 떠올린다. 고독사로 홀로 세상을 떠나는 노인은 꾸준히 늘어 2015년이 되면 7,800명 선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죽음 후에도 연고를 찾지 못하는 무연사(無緣死)는 2009년 587명, 2010년 636명, 2011년 727명, 2012년 810명으로 지난 3년간 25.2% 증가했다.
경기개발연구원에서 지난 주 ‘한국 노인의 사중고(四重苦), 원인과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여기서의 4중고는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이다.
이 사중고는 각각의 고통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 가난하니 사는 게 힘들고, 사는 게 힘드니 건강이 나빠지며 병에 걸리고, 대물림된 가난 때문에 자식의 보살핌을 끝까지 받지 못해 고독사로 생을 끝내는 것이다.
◈대물림 되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죽음
문제는 이것이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계층 중년, 장년층으로도 얼마든지 확대될 위험이 있다는 것. 고독사만 해도 노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60세 이상의 노인이 절반쯤이고 중장년층이 절반이다.
우리 사회 계층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어느 수준일까?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의 최근 발표를 보면 전 세계 176개국의 ‘건강불평등 격차’에서 우리나라는 33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17위. 유럽 복지국가들의 성적이 역시 좋다.
건강불평등을 보여주는 연구들을 찾아보자. 2008년 암 사망과 건강불평등 구조를 연구한 논문(손미아, 강원대)에 따르면 암은 맨 위 잘사는 계층과 가난한 아래 계층에서 많이 발생했다. 그런데 암 사망에서는 다르다. 월수입 335만 원 이상 계층에서 100명이 암으로 사망한다치면 월 100만원을 못 버는 계층에서는 125명이 사망에 이른다. 최저생계비도 못 버는 계층에서는 147명으로 늘어난다.
보건복지부의 건강불평등 보고서(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증진 전략 및 사업개발 용역 보고서)를 보면 각종 질병에 관한 격차가 드러난다.
남성들의 고혈압은 빈부격차가 없는데 여성은 가난하면 고혈압이 3배 더 높아진다. 당뇨는 남녀 모두 학력이 낮으면 발병 가능성이 4배 높아진다. 가난하면 여성의 당뇨 발병이 높아진다.
월드비전 건강불평등 격차 보고서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현상은 불평등에 의한 격차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 중에서 쿠바가 건강불평등이 적다. 오히려 미국은 46위로 우리보다 한참 아래다. 중국은 65위로 더 아래다.
‘부유하면 수명이 길고 가난하면 짧다’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불평등 역시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이 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불평등 1위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수명이 짧은 것도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불평등은 비만과 정신질환을 높인다. 마약도 불평등한 나라가 많다. 호주에 마약이 많고 일본 스웨덴 핀란드는 역시 적다. 돈과 재산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그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개인은 더 우울하고 불안하고 인격장애를 겪는다. 미국 비만율은 30%, 일본은 2.4%로 나타난다. 일본의 식습관만 갖고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불평등 수준과 관련이 있다고 학자들은 판단한다.
◈평등이 답이다
2005년 발표된 ‘2000 우리나라 성인 자살자의 인구사회적 특성“(김창엽 서울대)을 보면 대졸 학력에서 10만 명 당 자살자가 8명이라면 초등학교 졸에서는 121명, 15배 차이가 났다. 20대 젊은이들에게서도 대졸자와 초졸자는 7.4배의 차이가 났다.
직업에서 남성의 경우 공무원이나 회사 간부가 10 만 명 당 2.3명인데 농민은 56.5명이다. 20배 넘게 차이가 난다. 여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살로 인한 죽음에서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다.
자살자 400명의 유서와 수사기록을 분석한 논문 (서울대 박형민 자살, 차악의 선택) 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사업실패가 105건, 빚이 91건, 실직 45건, 생활고 45건의 순이었다.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평등이 답이다”라는 저서에서 세게 각 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결론은 불평등이 커질수록 경쟁이 커지고 불평등은 사회정책에서 더 확대되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을 줄이면 사회적 약자는 자존심이 손상되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계층을 차별할 위험이 커지며 사회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 기회의 균등, 각종 차별의 감소,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의 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와 사회가 맡아 처리할 시급한 과제이다. 가난한 이의 질병, 건강의 불평등은 우리 사회에서 상식의 문제로 볼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양식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