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입시학원 폐지' 둘러싼 갈등 첨예

터키 사회가 입시학원을 폐지하고 사립학교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정책을 놓고 빚고 있다.

정부는 교육 평등주의를 내세우며 폐지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학원 소유주들은 정부가 강제로 폐업시키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갈등은 정부와 학원 간의 문제를 넘어 이슬람에 뿌리를 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과 터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슬람 사상가 페툴라 귤렌의 지지층 간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는 18일(현지시간) 정부의 입시학원 폐지 방침이 터키 정계의 의제를 바꿔놨다고 보도했다.

◇터키 양대 세력, '입시학원'으로 정면 충돌

이번 논란은 일간지 자만이 최근 정부가 내년부터 입시학원을 폐지하며 사립학교로 전환하지 않고 운영하는 학원에 거액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는 보도에서 비롯했다.

터키의 입시학원은 상당수가 귤렌을 지지하는 이들이 세웠으며 자만도 귤렌을 지지한 사업가들이 만든 신문이다.

터키 입시학원은 '수업의 집'이란 뜻인 '데르샤네'(dershane)로 불리며 주로 고등학생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자 다닌다. 귤렌이 초기 설교사 시절 참여한 독서회 명칭도 데르샤네였다.

귤렌은 입시학원 폐지와 관련해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어려운 시기에 좌절하지 말고 인내하라고 당부했다.

귤렌 측 미디어그룹은 최대 판매부수 신문인 자만 외에 지한뉴스통신, 사만욜루TV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매체들은 연일 입시학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자만은 이날도 모든 성향의 정치집단이 입시학원 폐지에 반대한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는 기사를 실었고 심지어 정의개발당 의원들도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자만은 또 빈곤한 가정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고 '데르샤네'에서 공부해 대학입시에서 수석을 차지,터키 최고의 명문대인 보아지치대학에 입학한 성공 사례 등을 특집으로 다뤘다.

터키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귤렌 지지자들은 한때는 정의개발당과 함께 세속주의에 대항했으나 최근 들어 양측이 이견을 보이면서 대립했고 이번 입시학원 문제를 계기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휴리예트는 귤렌이 최근 쿠데타 음모 사건에 중형이 선고된 배경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해서 집권당이 귤렌 지지층과 세속주의 세력을 한 번에 공격하려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귤렌은 1971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청소년들에 불법으로 종교활동과 강의를 주선했다는 이유로 체포해 6개월간 억류된 바 있다. 귤렌은 1999년 당뇨병 등을 치료하고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살고 있다.

◇"단기적 대증요법" 비판…정부 "15년 전부터 논의"


다른 터키 언론들도 이번 논란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터키 교육제도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휴리예트의 이스메트 베르칸 칼럼니스트는 정부가 공교육의 근본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않고 입시학원을 없애는 대증적 조치를 내놨다고 비판했다.

그는 터키의 대학 신입생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의 40%에 그치는 구조적 문제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가 주관하는 대입고사는 지적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차별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학생들이 다양한 함정을 피해 정답을 찾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런 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입시학원만 없애는 것은 교육 평등주의 실현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터키의 고등학생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입시학원에서 시험에 대비하고 있으며 특히 시험을 치르는 해에는 병원에서 가짜 진단서를 사서 장기결석하고 입시학원에만 다니는 경우도 많다.

입시학원 소유주 연합회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이번 정책을 마련하면서 자신들과는 전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비난했다.

반면 일간지 사바는 나비 아브즈 교육부 장관이 이 문제는 15년 전부터 논의가 시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아브즈 장관은 이번 정책은 입시학원을 사립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목적으로 입시학원 측에서도 나쁠 것이 없으며 여러 차례 설명했다고 말했다.

실제 아브즈 장관은 지난 7월 입시학원 폐지와 함께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도 1년 전부터 입시학원 폐지 방침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2011년 기준 교육산업보고서를 보면 입시학원은 모두 4만55개로 이곳에 다니는 학생은 120만명 이상이다. 2000년에는 학원 1천730개, 학생 17만5천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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