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전 헬기가 왜 경로를 이탈했는지, 기체에 이상은 없었는지 등은 헬기에 장착된 블랙박스를 수거해 분석이 끝나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겠지만 사고 직전 헬기가 정상 경로를 벗어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고를 조사 중인 서울항공청 발표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 헬기는 오전 8시46분 김포공항을 이륙, 잠실 헬기장에 들러 LG전자 임직원을 태우려고 한강변을 따라 시계(視界)비행 중이었다.
시계비행은 육안으로 주변 상황을 보며 하는 비행이어서 따로 관제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게 서울항공청의 설명이다.
항공법 시행규칙상 도심을 피해 비행하게 돼 있고, 산악지역이냐 인구 밀집지역이냐에 따라 장애물에서 90∼300m 이상 고도를 높여야 하지만 헬기는 예외다.
그러나 당국 발표에 따르면 사고 헬기도 충돌 지점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일정한 고도에서 장애물이 없는 한강 상공으로 비행했다.
정상 경로를 유지하던 이 헬기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한강 둔치에 있는 잠실헬기장 인근에서 경로를 이탈하더니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아파트에 충돌할 정도로 고도가 낮았던 것은 목적지에 다다르자 착륙을 위해 하강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추측이다. 이 역시 정확한 이유는 블랙박스를 분석해야 알 수 있다.
사고 기종인 시콜스키 S-76C에는 시계비행이 불가능한 악천후에 대비해 계기비행을 할 수 있는 항법장치도 설치돼 있다. 다만 헬기의 경우 잠실 헬기장을 이·착륙할 때는 통상 시계비행을 한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결국 왜 경로를 이탈했는지가 이번 사고 원인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안개가 끼어 시정(visibility)이 불량해진 나머지 조종사가 위치나 고도를 착각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
사고 당시 아이파크 아파트에는 불빛을 깜빡이는 '경광등'이 켜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안개가 짙어 알아보지 못했거나 알아본 시점에서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변영환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헬기가 정상 경로로 운항하다 착륙 지점이 가까워지자 준비하려고 방향을 조정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안개로 시야가 흐린 탓에 너무 빨리 고도를 낮추거나 방향을 틀다가 정상적인 항로에서 벗어났을 개연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고가 난 아파트 외벽이 유리로 만들어진 특성 때문에 조종사가 착시 현상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성남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아파트 외벽 상당 부분이 유리로 돼 있는데, 여기에 한강과 같은 주변 풍광이 비치면 하늘에서 볼 때 물 색깔과 비슷해서 물 위를 나는 듯 착각할 수 있다"며 "안개 등 기상 상황에 따른 시정 불량과 건물 특성에 따른 착시 현상이 사고 원인일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 헬기가 당초 예정보다 출발이 지연되면서 서둘렀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사고기는 오전 8시35분 김포를 이륙해 오전 8시50분 잠실헬기장에 착륙해 탑승객을 태운 뒤 오전 9시 이륙, 오전 9시50분 목적지인 전주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김포를 출발한 시각이 오전 8시46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