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로반 피해 교민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

트럭에 매달려 파도 피해…먹을 것 없어 나흘간 물로 연명

"20년간 필리핀에서 쌓아올린 것들을 통째로 다 날렸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합니다."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 태풍 하이옌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필리핀 교민 한명학(66)씨는 14일 기자를 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 씨는 이날 오후 구호물자 수송을 위해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한 공군 수송기편으로 세부로 떠나기 전 기자와 만나 죽음을 눈앞에 뒀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니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면서 태풍이 닥쳐왔을 당시에는 재산을 잃은 것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태풍 예보가 있던 8일 새벽 필리핀인 부인과 여섯 살 된 딸을 타클로반시 인근 안전지대로 미리 대피시킨 뒤 레이테주 둘락타운에 있던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태풍이 오는구나 느꼈던 순간 집채만 한 파도가 한 씨를 덮쳤다. 한 씨는 물에 휩쓸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15t 덤프트럭에 매달렸고 이 과정에서 손과 양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태풍이 지나간 다음에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나흘을 물 몇 모금에 의지해 버티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물이 조금씩 빠지면서 한 씨는 나흘 만인 12일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겨우 가족과 눈물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가족과 재회한 기쁨도 잠시, 20년간 힘들게 쌓아온 재산을 잃은 한 씨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한 심정이다.

레이테주에서 10여 년 전부터 노래방 기기 대여업을 해 온 한 씨는 "물이 빠지고 보니 성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라면서 "어떻게서든 이 곳을 지키고 싶지만 가족이 불안해 해서 우선 마닐라의 친구 집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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