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제 바람이 이뤄진 게 하나 있다면 올해 열한 살 된 딸이 곁에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감독 되겠다고 가족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었죠. 햇수로 9년 동안 생활비도 못 줬으니……. 저야 철없이 돌아다녔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딸이 일곱 살때 더 파이브 시나리오를 쓰면서(더 파이브는 웹툰으로 연재되기 전 이미 시나리오 형태로 완성돼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뭘까 스스로에게 물으니 결국 가족이더군요. 웹툰 속 가족 이야기 그리면서 울기도 많이 했죠."
정 감독은 더 파이브 시나리오를 쓸 당시를 떠올리며 "인생 막장에 처해 있었다"고 전했다.
1994년 말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대학 졸업 뒤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온 그다. 대학 시절 각종 미술·디자인 대회 수상으로 인정 받은 시각디자인 전공을 살려 광고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그의 표현을 빌리면) 꾸준히 영화계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몇 년 뒤 불어닥친 외환위기 탓에 생계가 막막해지자 폐지를 줍고 공사장을 전전하다가 1999년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2005년부터 다시 영화를 준비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고, 그 즈음 당한 세 차례의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입원할 때마다 시나리오를 한 편씩 썼는데 그 중 하나가 더 파이브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정말 인생 뭐 같다'고 비관만 했었죠. 그러다가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 약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시나리오가 더 파이브입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지만, 영화로 서둘러 풀어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들고 쫓아다니지 말고 그들이 오게 하자'는 무모한 생각으로 2011년 웹툰 연재를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죠."
정 감독은 영화든 만화든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전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야기가 재밌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죠. 제 딸도 보고 듣게 될 그 이야기. 제 안에는 쌓여 있으면 안 되는 저만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어릴 때 친구들과 놀다가 '밥 먹고 놀라'는 엄마 말에 밥 먹으면서도 놀 생각만 하는 아이 같은 마음. 어서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야죠."
"어릴 때부터 쭉 그랬다.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빼놓지 않고 봤다. (웃음)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길을 떠나는 여정'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 모험을 즐기고 있다. 더 파이브 역시 가족을 잃은 은아가 복수까지 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다. 그 길에서 조력자들도 만나는 여정 말이다."
-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의 성격이 있을 텐데.
"가능하다면 소시민의 삶을 말하고 싶다. 요즘에는 그런 이야기가 눈에 잘 안 띄더라. 가진 것 없고 어딘가 엉성하지만 따뜻한 사람들 얘기 말이다. 그런 걸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랄까, 그들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아파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공감한다는 그런 느낌."
- 영화 더 파이브도 그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복수극이라는 외피를 지녔지만 사실 인간 군상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었다. 극중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들은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빈틈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잔인하고 차가운 놈과 맞부딪혔다. 시소의 한 쪽에 놈을 태우고 다른 쪽에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태워도 놈 쪽으로 기울 것 같은 분위기. 그 속에서 주인공 은아를 구심점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변해가는 여정을 그리고 싶었다."
- 웹툰의 캐릭터와 영화에서 연기한 배우들이 무척 닮았더라.
"웹툰 캐릭터를 구상할 때 염두에 둔 배우는 딱 한 사람, 마동석 씨다. 그의 사진이나 영화 스틸 컷을 참고해 체포 담당인 대호를 그렸다. 영화화를 위해 배우를 물색할 때 다른 캐릭터들은 기존 자기가 해 왔던 것을 비틀고 싶어 하는 이들을 찾았다. 첫 연출작에서 배우들 덕을 무척 많이 봤다. 우선 소통이 잘 됐고, 자기 영역 안에서 마음껏 연기해 줬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영화에서 부족한 부분은 감독 탓이고, 잘 된 점은 배우들, 스태프들 덕이다.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 극중 유독 도미노가 자주 등장하던데.
"일단 은아의 직업이 도미노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프닝에 처음 등장하는데, 예쁜 그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국내에는 전문적인 도미노 아티스트 팀이 없다는 점에서 색다를 것 같아 빌려왔다. 은아가 딸의 생일을 축하해 줄 때나, 놈을 추적하며 고민할 때 도미노는 그녀의 심리를 나타내는 장치가 된다. 엔딩에서도 도미노가 극적으로 활용된다."
- 살인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으로만 그려지더라.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놈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일부러 안 했다. 놈은 그냥 잔인한 살인마다. 완벽한 살인마와 빈틈 많은 사람들의 대결을 보여 주고 싶었다."
- 광고 연출도 했던 것으로 아는데, 영화와는 어떤 점이 다르던가.
"광고는 호흡이 짧은 반면, 영화는 길다. 딱 짜여진 콘티 안에서 광고주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광고에는 큰 변수가 없다. 영화는 날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뛰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힘들더라.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 찍다 보니 이야기 전체를 머릿속에 항상 그려놔야 했다. 찍어놓고 못 쓴 장면들이 많아서 고생한 배우, 스태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신인 감독으로서 그것 만큼 큰 잘못이 없다."
- 영화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인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에 대한 쾌감. 만화와는 또 다르더라. 만화를 그리면서 인기를 얻었고, 집도 차도 샀다. 그런데 잘 풀리던 와중에 주변의 소중한 분들이 갑작스레 사고로, 안 좋은 일로 돌아가셔서 우울증이 생겼었다. 수련원도 가고 기도원도 가고 정신과도 가보고 했다. 수련원에서 만난 한 분이 내 만화를 알고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 '내려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 길로 내려와 밴드 보컬을 하다가, 영화를 다시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살면 얼마나 살겠냐, 해라'더라."
-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듯한데.
"세상에서 아내와 딸만이 나를 통제할 수 있다. 한때 결혼과 행복은 나라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어둠의 자식,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광고 일 하면서 한참 겉멋 들었을 때 디자인하던 아내를 만났는데, 내가 가진 게 많은 줄 알았는지 결혼까지 했다. 후회 많이 했을 것이다. (웃음)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