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신대륙 원정이 유럽에 남긴 것

[여행수첩]

홍기정 모두투어 부회장
유럽이나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밭을 볼 수 있다. 밭의 규모도 매우 크지만 밭에 심어진 채소들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이중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이 있는데,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호박 등 이다.

이렇듯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전세계 사람들의 식생활 문화를 바꾸어 놓은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다양한 채소들을 가져오기 전까지 유럽의 식량 사정은 좋지 못했다. 게다가 1347년 처음 창궐한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인구도 많이 줄어든 시기였다.

특히, 당시 북유럽의 농민들은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후추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슬람세력이 교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많은 황금이 필요했지만 유럽에서는 황금이 별로 생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도와의 직접교역을 통해 후추와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콜럼버스의 목적은 애초에 황금과 인도로의 새로운 항로 개척이었으나 그가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가지고 온 것은 바로 감자,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호박, 고추 그리고 초콜릿과 담배 등 이었다.

흥미롭게도 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처음 건너온 감자는 당시에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해 감자 재배를 잘 하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은 기후가 따뜻해서 먹거리가 넘쳐났으며, 감자의 울퉁불퉁한 모양 때문에 푸대접을 받았다. 또 열대 고지대에서 자라던 감자는 위도가 높고 낮이 긴 유럽에서 잘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스페인 대신 영국의 지배하에 항상 기근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사람들이 감자를 많이 심기시작하면서 기아와 궁핍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 감자는 아일랜드인에게 있어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1843년 미국에서 발생한 감자마름병이 1845년 유럽을 거쳐 감자가 주식이었던 아일랜드을 덮치면서 쉼 없이 굶주리며 죽어나간 사람들의 시체는 한꺼번에 마을 곳곳에 묻혔다고 한다. 이로 인해 1851년까지 약 200만 명의 인구가 죽거나 행방불명 되는 대재앙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의 퇴화방지와 초기 질병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씨감자를 미국에서 들여왔고, 영국의 식민정책에 따라 농업지주들이 감자와 같은 환금성작물 재배를 급속히 늘리며, 단일 품종으로 재배하였기 때문에 피해가 더 심각했다.

아일랜드에는 감자 이외에도 각종 곡식을 많이 재배했으나, 대부분이 영국으로 강제 수출되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부분의 식량을 감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아이들과 노인층의 피해가 심했으며,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1920년까지 이어지며, 약 200만 명이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하는 등 인구가 1845년 기근 발생직전의 절반수준까지 감소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파한 담배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492년 오늘날 바하마제도의 한 섬에 상륙한 콜럼버스 일행은 원주민들로부터 여러 가지 선물을 받게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매우 향기가 높은 어떤 식물의 마른 잎'인 담배였다. 이후 원주민들의 흡연 풍습을 본 후 이를 고국에 알리게 된 것이다. 담배는 전세계를 거쳐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대표적인 기호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푸대접 받던 작은 작물 하나가 한 사회를 살릴거나 파멸로 이끌수도 있고, 잎파리 하나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홍기정(모두투어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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