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러시아 모스크바 소아병원 암센터. 의사의 다리 절단 판정에 9살 소녀 스베트라나와 엄마 이리나(33) 씨의 얼굴이 병실만큼이나 창백해졌다.
사할린과 모스크바 등 병원을 찾아 헤매던 지난 몇 년간의 발걸음을 이젠 멈춰야 했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소녀, 깊은 한숨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한국으로 가보자" 어느 날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고 돌아온 엄마의 한 마디. 스베트라나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8월, 모녀는 대전의 선병원을 찾았다.
'해면상 혈관종'. 스베트라나가 선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오른쪽 발목과 발뒤꿈치, 발등에 퍼진 암조직으로 뼈까지 녹아내린 상태였다.
스펀지 모양으로 변형된 혈관이 근육 주위로 엉겨 붙으면서 다리는 두 배 이상 굵어졌다. 발뒤꿈치 피부는 이미 괴사가 진행 중이었다.
"한번 해봅시다" 이승구 박사는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진행했다.
"모스크바 의과대학으로부터 종양이 퍼진 부위와 범위 등 라나의 상태를 전달받고 직접 살펴보니 상황이 안 좋았어요. 하지만 자연치유 능력이 뛰어난 어린아이라 잘만 치료하면 걸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 모녀는 "종양이 제거됐다"는 말을 들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8일에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최종 진단도 받았다.
인터뷰는 웃음꽃 속에서 진행됐다.
- "병도 다 고쳤으니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 "뛰어 본 기억이 없어요. 뛰는 거랑 춤추는 거랑 하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실컷 뛰어 놀고도 싶고요"
-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춤추는 사람이요. 한국어를 공부해서 아픈 사람 도와주는 통역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그 동안 배운 한국말을 자랑하던 스베트라나의 입에서 '아파', '안 아파'라는 말이 섞인다.
- "지금도 아파?"
= "안 아파!"
소녀는 다리를 얻었고, 사람들은 행복을 얻었다. 소녀의 웃음은 축복(祝福)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