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무역 배상요구 앞장선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총리 "사과·배상 요구는 우리의 책무"

카리브해 국가들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 노예무역 배상을 추진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이러한 배상 운동의 중심에 인구 11만명의 작은 섬나라가 있어 특히 시선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는 10일(현지시간) 카리브해 국가들의 노예무역 배상 운동을 이끄는 섬나라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의 랠프 곤살베스(67) 총리의 주장을 소개했다.

13년째 총리로 재직중인 곤살베스 총리는 인터뷰에서 "이것은 우리 세대를 규정짓는 문제"라며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열강으로부터 사과와 함께 배상을 받아내는 것은 자신의 도덕적 책무라고 밝혔다.

그는 "국제법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며 법과 사실관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학자와 활동가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와 카리브해 섬의 사탕수수 농장 등에 팔아넘겨 막대한 이익을 얻은 유럽 국가에 배상을 주장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 식민통치 때 가혹행위를 당한 케냐인들이 지난 6월 법정 투쟁을 통해 영국정부로부터 수백억원대 배상을 받기로 합의하자 카리브해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등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15개국은 케냐인들을 대리한 영국 법무법인 리데이를 지난 7월 선임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를 상대로 국내법정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각국은 소제기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노예무역으로 입은 손해를 산정하기 시작했다.

1840년대 카리브해로 이주한 포르투갈계 노동자의 후손인 곤살베스 총리는 소송을 추진 중인 카리브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배경이 배상금 청구 주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질문에 "나는 카리브해 사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곤살베스 총리는 "1833년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영국 정부는 카리브해에 농장을 소유한 영국인들에게 재산(노예) 상실의 대가로 현재 가치 165억 파운드(28조3천억원)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했지만 당시 노예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아이티는 1825년에 프랑스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기 위해 오히려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급했다.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아이티 대통령은 프랑스에 배상금을 주려고 프랑스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린 것이 빚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아이티 빈곤의 원인이 됐다며 2003년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은 "노예무역에는 반대한다"면서도 배상은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소송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 외교부는 대변인을 통해 "영국은 노예제도를 무조건 반대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면서도 "(과거 노예제에 대한) 배상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측도 아이티의 배상금 반환 요구에 대해 배상금 지급은 해법이 아니라며 "아이티에 대한 프랑스의 원조가 일종의 배상이며 이미 프랑스는 배상금 이상의 원조를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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