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일선 경찰관의 부담을 줄이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는 경찰이 장구를 무분별하게 사용해도 이를 막을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청은 내부 훈령인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의한 직무집행 시의 보고절차 규칙'을 개정해 지금까지 경찰 장구를 사용하면 '경찰 장구 사용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했던 규정을 없애고 근무일지에만 관련 내용을 기록하도록 했다고 10일 밝혔다.
다만 전자충격기(테이저건)는 비교적 사용 빈도는 낮으면서도 위험성이 높은 만큼, 사용할 때마다 '전자충격기 사용보고서'를 따로 작성해 보고하기로 했다.
경찰 장구는 총기 등 무기가 아닌 수갑, 경찰봉, 포승줄, 방패 등 범인 검거 및 범죄 진압에 사용하는 장비를 말한다.
그동안 경찰 일선에서는 장구를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당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다.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장구 사용에 대해 인권 침해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어, 경찰 내부에서는 이 규정이 일선 경찰관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이 일어왔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인권침해 시비가 불거지면 수사 또는 감찰 결과에 따라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판명되더라도 훈령 상의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외부에서 문제제기를 받는다"며 규정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해당 규정이 경찰의 마구잡이 장구 사용을 통제해왔다"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불법 집회에 대해 ‘15분 만에 즉시 현장처리’하기로 하는 등 경찰의 공권력 행사 수위가 갈수록 높아질 조짐을 보여, 경찰이 정권 차원의 공안정국 조성에 한몫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보고 규정을 둔 것은 경찰관의 자의적 장구 사용을 통제해 국민 인권을 지키려는 취지"라며 "이를 폐지하는 것은 경찰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국민 인권을 도외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존 규정으로도 충분히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부 훈령인 '경찰 장비 관리규칙' 상 경찰 장구를 사용하다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면 사후 보고하도록 한다"며 "사용보고 의무 폐지는 불필요한 서류작업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운동가들은 이미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한 뒤에야 사후약방문 격으로 보고해서는 통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랑희 활동가는 "공권력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도록 통제하는 규정을 불편하다며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만약 공권력에 저항하기 어려운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면 인권 침해 사실이 묻힐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